매일신문

[기고] 아직도 요원한 점자도서관 정책

대한민국 최초의 시각장애인도서관인 한국점자도서관이 태동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69년이다. 한국점자도서관은 고 육병일 관장님 개인의 사비로 건립, 운영됐다. 국가가 해야 할 몫을 개인이 짊어졌기에 한국점자도서관의 운영 과정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33㎡(10여평)의 공간에서 60~70권의 책으로 도서관 사업을 시작했으며 두 번 이상의 폐관 위기도 겪었다.

지난 12월 10일에 열린 한국점자도서관 40주년 기념식에는 행정기관 관계자, 정치인, 지방자치단체장 등 많은 인사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격려 또는 축하 인사를 통해 하나같이 장애인 당사자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관련법과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이날 이야기된 내용만 들어보면 점자도서관의 미래는 걱정거리가 전혀 없어 보인다. 하지만 행사 때마다 빌 공자 공약만 남발하는 지도자들의 말만 믿고 기대를 걸기에는 뭔가 불안한 마음이 앞선다.

안타깝게도 점자도서관은 장애인 복지법, 독서진흥법, 도서관법에서 사립도서관으로 인정하고 있다. 점자도서관을 국가 차원에서의 운영이 아닌 개인 운영 차원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결국 법적'제도적으로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현재 점자도서관의 운영에 있어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운영 체제가 이원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점자도서관을 단순히 시각장애인복지관 프로그램 중 하나로 여기고 있으며 문화체육관광부는 자료구입 명목으로 생색내기 위한 몇 푼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문제는 운영비나 도서관 공간 마련 등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져야 할 절실하고 중요한 사안에서 두 부처가 서로 자기 소관 업무가 아니라며 떠넘기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점자도서관이 사립도서관 차원에 머물러 있고 명확한 국가의 관련 부서가 없으며, 변변한 자체 건물조차 갖추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첫째, 시각장애인들의 수적 열세와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오합지졸의 면모를 보여준 때문이며 둘째로는 정치인들이 많은 표를 따라다니기에만 바빠 점자도서관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셋째는 공무원들은 제도나 법 타령하기만 바쁠 뿐 문제점을 찾거나 무엇이 부족한지에 대한 당사자의 의견을 무시한 결과일 것이다. 또한 본인이 최근에도 경험했듯이 점자도서관 등 장애인 시설이 자기 지역에 건립되는 것을 반대하는 등 시민 의식의 부족 등으로 인한 것이라 여겨진다.

현재 점자도서관은 전국에 약 40개 정도가 운영되고 있으며 모두가 사립으로 운영되고 있다. 선진국은 물론이고, 그렇지 못한 나라도 문화정보 소외계층을 이렇듯 무책임하게 내버려두지는 않는다.

정작 시각장애인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점자도서관의 출발을 개인의 희생과 봉사로 시작하도록 내버려 두었다면 이제라도 국가 차원에서 정책을 입안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 정책은 탁상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직접 대화하고 발로 뛰어 얻어낸 결과여야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시각장애인은 손이나 귀 등의 시각 이외의 감각 기관을 이용하여 문자를 해독해야 한다. 기본적인 정보활동을 제대로 보장해 달라는 것은 결코 과도한 욕심이 아니라 생각한다. 하루빨리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정보로부터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고 윤택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이재호 경북점자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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