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화 '인디아나 존스 3편'에서 인디아나 존스 박사가 성배를 찾기 위해 들렀던 성전이자 최첨단 기술이 사용되었던 영화 '트랜스포머'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세계 신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페트라(Petra)'가 있는 아라비아 반도 북부에 위치한 요르단(Jordan)은 나라 전체가 유적지로 불릴 정도로 많은 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국가이다.
다른 중동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90% 이상이 이슬람교를 믿는 전형적인 이슬람 문화를 가진 곳이지만 역사적 특수성으로 인해 기독교 유적지도 많아 현재 요르단 내 5개 지역이 교황청이 지정한 성지로 등록되어 있어 성지 순례를 위해 기독교인들의 방문이 잦은 곳이기도 하다.요르단의 관문이자 수도인 암만(Amman)에서 남쪽으로 150km가량 떨어진 페트라는 요르단 여행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곳으로 기원전 6세기경 아라비아 반도에 정착한 유목민족 나바테아인(Nabataeans)들이 세운 곳이다.
페트라 주변은 황량한 사막과 협곡으로 둘러싸여져 있어 사람이 살기에 좋은 환경을 가진 곳은 아니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물이 풍부한데다 지리적으로 이집트와 아라비아 반도, 페니키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실크로드와 왕의 대로를 따라 무역을 하던 대상들의 왕래가 잦았던 교역 도시로 서기 2세기까지 나바테아인들의 수도이자 종교적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었다. (성경에서 모세가 지팡이를 치자 12개의 샘이 솟아났다는 지역이 현재 페트라가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106년 로마에 정복당하고 세월이 흘러 로마가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리된 후 페트라는 동로마가 통치하게 되는데 이때 동로마가 페트라보다 수도에 더 가까운 시리아의 팔미라를 무역의 중심지로서 이용함에 따라 자연스레 대상들의 활동 무대도 시리아로 옮겨지면서 페트라는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이후 6세기 무렵 있었던 강력한 지진으로 인해 끝까지 이곳에 남아있던 사람들도 다른 지역으로 이주함으로써 페트라는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페트라는 1812년 스위스 탐험가 요한 부르크하르트(Johann Ludwig Burckhart)에 의해 발견되는데 그는 일행들과 함께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에서 카이로로 가는 도중 요르단 지방을 지나다 한 아랍인으로부터 근처에 굉장한 유적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유적을 직접 확인해 보기 위해 험준한 협곡을 지나 도달한 끝에 붉은 빛 암벽에 조각된 거대한 도시인 페트라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스어로 페트라는 '바위'를 뜻하는데 실제 페트라의 대부분 건축물들은 쌓아 올리면서 만든 건축물들이 아닌 암벽을 깎아 내려가면서 조각해 만든 건축물들이다.
이렇게 암벽 조각 건축이 발달한 이유는 페트라를 둘러싼 협곡들의 암석들이 조각하거나 파내기가 쉬운 사암이기 때문으로 한번 깎아내면 되돌릴 수 없는 조각 건축의 특성상 매우 정교하고 정밀하게 건축되어 있어 페트라 유적지에 공존하는 로마 유적들과 비교해 볼 때 상대적으로 더 뛰어나 보인다.
페트라에 도착했다 하더라도 여행자들은 상상했던 페트라의 웅장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데 그 이유는 100m가 넘는 높이의 바위들이 2km 가까운 거리에 걸쳐 2~3m의 좁은 폭으로 형성되어 있는 시크(Siq)라 불리는 바위 협곡을 통과하는 자들에게만 비밀스럽게 간직해 온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으로 이렇게 험준한 지형 속에 페트라를 건설하게 된 이유는 당시 사막의 무법자로 불리던 베두인족(Bedouin)의 침략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현재, 페트라에는 물을 원활히 공급하기 위한 수로 시설을 비롯해 3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 왕가의 무덤, 신전, 수도원, 목욕탕 등이 남아있는데 모두 탄성을 자아낼 만큼 뛰어난 유적들이지만 그중에서 여행자들에게 제일 인기가 좋은 곳은 시크를 지나 제일 먼저 마주치게 되는 페트라의 보물 창고라 불리는 알 카즈네(Al Khazneh)이다.
좁고 긴 시크를 통과하는 동안 여행자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펼쳐질 광경에 대해 제각각의 상상을 하며 걸어가게 되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조금씩 협곡 사이로 들어오는 빛의 양이 많아질 때 쯤 붉은색 암벽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이 조금씩 그 자태를 드러낸다.
기원전 100년경 건축된 알 카즈네는 6개의 원형 기둥이 받치고 있는 2층 형태의 신전 건물로 좁은 협곡 사이에 위치해 있어 한눈에 전체를 담기가 힘들어 더 큰 신비감으로 다가온다.
베두인들은 이집트의 파라오가 보물을 숨겨놓은 곳이라 추측하여 알 카즈네를 '보물 창고'라는 이름으로 불렀으나 실제로 내부에 들어가 보면 화려한 보물이 있었던 장소일 것이라는 큰 기대를 안고 이곳을 찾은 이들의 실망스러운 탄성이 심심치 않게 들릴 정도로 아무 장식도 없는 텅 비어 있는 작은 사각형의 방 만이 여행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알 카즈네는 페트라의 대부분 유적들과 마찬가지로 왕가의 무덤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며 아레타스 3세(Aretas Ⅲ)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화려한 명성과 달리 내부는 소박하지만 높이 43m, 너비 28m에 이르는 사암 절벽을 깎아내 만든 헬레니즘 양식의 외관 정면부에는 제우스신의 쌍둥이 아들인 카스토르와 폴룩스의 기마상과 풍요의 여신인 알우자 등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어 고대 조각 건축의 진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왜 많은 이들이 이곳에 보물이 숨겨져 있을 거라 추측했는지 쉽게 이해가 간다.
밤이 되면 알 카즈네는 여행자들에게 낮과는 또 다른 매력을 선보인다.
어둠이 짙게 드리운 길고 좁은 시크를 작은 등불 하나에 의치한 채 알 카즈네 광장에 다다르면 알 카즈네를 희미하게 비추는 많은 불빛들과 은은히 흘러나오는 피리 소리가 이곳을 찾은 여행자들을 고대의 페트라로 안내한다.
알 카즈네 근처에 있는 바위산을 반쯤 깎아 만든 33층의 계단 형태의 원형극장은 나바테아인들이 건축했던 것을 훗날 로마인들이 확충한 곳으로 3천명을 수용 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데 당시 종교 의식과 다양한 회의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원형극장 주변으로는 다양한 유적과 왕족들의 무덤 등이 있으며 절벽 길을 따라 올라가면 내부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어 수도원으로 추측되는 건물이 나오는데 입구의 높이만 8m에 이를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어 알 카즈네와 함께 인기가 좋은 곳이다.
이 외에도 페트라 남쪽으로 가면 만나게 되는 영화 '아라비아 로렌스'의 배경이 되었던 와디룸(Wadi Rum) 사막도 가 볼만한 곳으로 사막 한가운데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 주변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금방이라도 떨어질듯이 빼곡하게 밤하늘을 수놓고 있는 별들을 바라보며 하룻밤을 지내보는 것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직항편 없어 유럽 등 경유
현재 한국에서 요르단으로 직항하는 항공편이 없기 때문에 유럽이나 이스탄불, 두바이, 델리, 방콕 등을 경유해 요르단의 수도 암만으로 들어가야 한다.
암만에서 페트라의 관문 도시인 와디무사까지는 버스로 약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요르단 명예 영사관서 비자 발급
국내에서 비자를 발급받아 갈 경우에는 종로의 서울 요르단 명예 영사관(02-3701-8464)에서 발급 받을 수 있으며 관광 비자의 경우 신청서, 유효기간 6개월 이상 남은 여권, 여권용 사진 1장을 준비하면 되며 비자 발급까지는 3일이 걸린다.
요르단의 공항이나 국경에서도 비자를 발급 받을 수 있는데 비자수수료로 미화 20불 또는 요르단화 4 디나르를 지불하면 된다.
김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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