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은 '팡세'에서 "나는 내가 여기에 있고 저기에 있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과 놀라움을 느낀다. 나는 왜 저기에 있지 않고 여기에 있는가? 나는 왜 그때에 있지 않고 지금 이때에 있는가? 누가 나를 여기에 갖다 놓았는가? 누구의 명령, 누구의 지시로 이 시간, 이 장소가 나에게 마련되었는가?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전율케 한다"고 인간의 근원적인 존재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면서 그는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덧붙였다.
문예이론가 루카치는 '소설의 이론'에서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라고 말했다. 팡세의 말은 고독한 인간의 실존에 대한 잠언이고, 루카치의 언어는 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갈 길을 잃어버린 인간들에게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가 문제적 주인공을 등장시켜 자신의 존재와 상실한 유토피아의 꿈을 찾아가게 한다는 그 유명한 말이다.
한 해가 저무는 길목에 우리는 서 있다. 참으로 숨가쁘고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 용산참사, 미디어 법, 4대강 논란, 세종시 이전문제 등으로 사회는 어김없이 분열되었고 소용돌이쳤다. 긴 불황 속에 쪽방생활자가 8년 새 16%가 증가했으며 절반가량이 신용불량자라는 기사도 보인다.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난한 일상인들은 차가워진 현실 경제 속에서 몸을 떨며 한 해를 보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안한 존재인지 모른다. 파스칼의 말처럼 인간은 생각하고 사유하지 않으면 실존자체가 불안하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근원적으로 사유하는 인간이다. 현실의 세파 속에서 '갈대'처럼 약하고 흔들릴지라도 역사의 엄정함과 이웃공동체의 헌신을 신뢰하면서 한 해를 보내고 또다시 희망찬 새해를 맞이해야겠다. 인간의 생존은 좌절이 아니라 멈추지 않은 강렬한 저항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부터 쓰기 시작한 '시사코멘트'도 8개월을 달려와 어느덧 마지막 회에 도달했다. 그간 미숙한 글을 읽어주신 많은 독자 분에게 감사드린다. 마지막 글에서 내 시 한 편 정도 인용하는 것에 대해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싶다.
"촛불을 켜자/이 밤 자신의 몸을 태워 빛을 뿜어내는/한 자루 촛불을 밝혀 세상을 환하게 밝혀보자/그래 올해도 어김없는 송구영신이다/들판에서 일하던 아버지가/삽에 묻은 흙덩이를 풀자락에 문질러 흙을 씻어내고/늦은 저녁을 들기 위해 집으로 귀가하는/재봉틀을 돌려 옷감을 다듬던/어머니의 재봉틀 소리가 흐릿한 전등 아래서/딸그락 멈추는 한 해의 끝자락 송구영신이다/동성로 광장에선 구세군 종소리가 금속성으로/ 지나가는 행인의 귀를 후벼 파고/애기를 등에 업고 육교 위에는 엎드린/ 행려 어머니의 플라스틱 바구니가 여전히 텅 비어 있다/대구역 뒤 공사장 빈터, 달성공원 복개도로 위를/말없이 걷고 있는 노숙자들의 목덜미를/휑하니 찬바람이 훑고 지나간다/공원 나뭇가지 끝에 걸린 새파란 초승달이/거미줄 같은 도시의 미로를 비추고 있다/그래, 인생은 우리가 묵묵히 걸어가는 /이름 모를 산! 길인지 모를 일이다/ 가파른 고갯길을 겨우 오르면 바위산이 우릴 맞기도 하고/그 바위 틈새에서 산국화가/ 시골처녀같이 수줍게 목을 밀어 올리기도 한다/잎이 말라 서걱거리는 옥수숫대 가지 위로/겨울 서설이 내린다 도회지 뒷골목에도/붉은 알전구등 불빛이 새어 나온다 /오늘밤 한 해를 마감하면서 나는 누구의/불꽃 이었나 어두운 주위를 휘이 둘러본다/아무도 없다 이 막막함, 이 두려움/촛불을 켠다 나는 기어코 내 어둠을 밝히리라/오늘밤 내 이웃을 위해 헌신의 촛불을 든 이가/ 가장 신성(神聖)하다 가장 평화이다(「촛불」중)"
20세기의 위대한 사상가 이반 일리치는 기계문명 때문에 인간이 파편화된 후기 자본주의 현실에서 그래도 소외된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우애'라고 말한 바 있다. 나 아닌 타자에게 보내는 조건 없는 우애, 세상 살아가면서 그것보다 귀한 것도 많지 않을 것이다.
시인'경북외국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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