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신경외과 수련의 선발시험이 있었다. 경쟁이 치열해서 엄격한 선발과정을 거쳤다. 교수가 지원자와 면접을 해서 점수를 주는 과정이 있었다. 이 점수는 전체 선발 시험의 점수에서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소수점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순간에는 지대한 역할을 할 점수였다. 면접에서 모든 지원자들에게 꼭 물었던 질문이 하나 있다. "왜 신경외과를 지원하여 신경외과 의사가 되려고 하느냐?"였다. 다양한 대답이 있었다. 한 지원자의 대답이 내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
"제가 인턴을 하면서 신경외과를 돌던 중이었습니다. 중환자실에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들이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을 왜 치료하는지를 모르겠더라고요. 모두가 금방 돌아가실 것 같고 그렇지 않으면 식물인간이 될 것 같아서요. 그런데 하나, 둘 의식이 돌아오고 회복해서 중환자실에서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문득 깨달았어요. 저 나무토막처럼 무의식 상태로 누워 있는 그들의 몸속에도 희망의 싹이 숨어있는 것을. 불쑥 그 희망의 싹을 찾아내서 키워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신경외과를 지원했습니다."
그래, 신경외과 의사들은 그런 조그만 희망에 매달려서 울고 웃으면서 살아간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이 누워 있던 환자가 어깨를 꼬집었을 때 얼굴이라도 찡그리면 우리들은 기쁨으로 몸이 붕 뜨는 듯한 느낌을 얻는다. 문득 환자가 스스로 눈을 뜨고 있는 모습을 발견이라도 하면 그 환자가 틀림없이 살아날 것이라는 믿음으로 힘이 불끈 솟기도 한다.
그래, 신경외과 중환자실은 분명히 희망이라는 단어가 부족한 공간이다. 부족하다고 해서 희망이 전혀 없는 곳은 아니다. 아무리 희망의 새싹들이 연약하다 하더라도 우리 신경외과 의사들은 그것들을 키우려고 밤잠을 설치고 고민을 하는 그런 곳이다. 솔제니친이 쓴 '암병동'이라는 소설에서 주인공이 암병동에서 살아나오면서 "아흔아홉 사람이 울고, 한 사람이 웃는 곳에서 왔다"라고 외치듯이, 신경외과 환자들은 신경외과 중환자실에서 나오면서 "아흔아홉 희망의 싹이 말라죽고 하나의 싹만 살아나는 그런 곳에서 살아왔다"라고 외칠 수도 있는 그런 곳인 것이다.
그 지원자는 아마 합격하여 앞으로 힘든 신경외과 수련의 과정을 겪어나갈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그 지원자에게 진심으로 부탁할 말이 하나 있다. 신경외과 의사의 업을 놓는 그날까지 신경외과를 지원하면서 한 말을 잊지 말라고. 버려진 나무토막에도 맛있는 버섯이 솟아 나오도록 하는 포자(胞子)가 숨어 있듯이, 나무토막같이 혼수에 빠져 누워 있는 그들에게도 희망이라는 포자가 숨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임만빈<계명대 동산병원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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