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병휘의 교열 단상]산 넘어 산

어느덧 2009년이 저물어 간다. 직장인들은 올 한 해를 축약하는 사자성어로 먹고살 걱정이라는 뜻의 '구복지루'(口腹之累)를 선택했다고 한다. 갈수록 고생이 겹치거나 더 심해짐을 이르는 말로 '산 넘어 산'이라고 한다. 이런 말을 듣지 않는 새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걱정거리가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누구나 나름대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돈도 그 중 하나다. 돈과 재물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그것을 다루는 사람에게 윤리적 책임이 있을 뿐이다. 이를 알면서도 우리는 혼란스러워한다. 있어야 선하게 살고 없으면 힘들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돈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재물 많은 사람 앞에서 주눅이 들기도 한다.

삶의 아홉이 걱정이고 감사는 하나뿐이더라도 그 하나를 붙잡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감사하는 것이 마음을 여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감사하다 보면 실제로 감사할 일이 생겨나고 걱정하다 보면 걱정거리가 겹치게 된다. 시각이 삶을 바꾸는 것이다. 새해에는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 보면 어떨까.

'산 넘어 산'에 나오는 '넘어'를 '너머'와 헷갈려하는 것을 교정 작업을 하면서 가끔씩 접한다.

'너머'는 높이나 경계를 나타내는 명사 뒤에 쓰이어 높거나 넓은 것의 저쪽이라는 뜻을 가진 명사로 띄어 써야 한다. '넘어'는 수량이나 정도가 한계를 지나거나 높은 데를 지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넘다'에 어미 '-어'가 연결된 것이다. "어려운 고비를 넘어 이제 큰 문제는 없다." "'산 너머 남촌에는'은 매주 수요일 저녁 방영되는 KBS 1TV 전원드라마다." "들창 너머, 파랗다 못해 보라색을 머금은 하늘이 눈에 싱싱했다." "그런 말은 빈정거림을 넘어 시비를 거는 것에 가깝다."라고 쓰인다.

"살면서 참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는 지극히 높은 사람부터 길거리의 부랑자까지. 그러면서 소중한 것을 배웠습니다. '인간은 다 똑같다'는 겁니다. 잘난 사람이건 못난 사람이건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고 그러면서 자신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마음을 열게 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알게 됩니다."

수산나 메리 영거(73)라는 영국인이 본지와 인터뷰한 내용이다. 수산나 여사가 1959년 당시 천주교 대구대교구장 서정길 대주교의 초청으로 23세 꽃다운 나이에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하느님의 뜻을 알리겠다며 한국에 찾아온 지 올해로 만 50년이 됐다. 잘나고 똑똑하고 존경받는 사람은 그 자신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타인들로부터 인정과 사랑을 받기 때문에 남들에게도 그렇게 비쳐진다는 수산나 여사가 한 말이 며칠 남지 않은 올해를 보내면서 뇌리에 남는다.

교정부장 sbh12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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