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009년이 다 저물어 간다. 돌이켜보면 올 한 해 한국 경제는 두려움과 염려 속에 출발하였다. 100년 만에 온다는 세계 경제 위기에 대한 공포감이 경제 심리를 크게 위축시키고, 제2의 외환위기를 맞지 않을까 하는 큰 걱정이 앞선 한 해였다. 사실 2009년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 세계 경기가 가장 침체된 해였다. 세계 경제의 3대 주요국인 미국, 유럽, 일본이 모두 감소 성장을 기록한 사례가 종전 이후에는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최악의 대외 여건 속에서도 국내 경제는 다행히 그 어떠한 경제 위기도 겪지 않고 오히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기 회복력을 과시하는 성과를 나타냈다. 캄캄한 경기 침체의 터널 속에서 우리 경제는 길을 잃지 않고 이제 밝은 희망의 대로로 나설 수 있게 되었다. 비극적으로 예견되었던 2009년 한국 경제 극본이 막판에 해피엔딩으로 귀결된 셈이다.
올해는 한국 경제가 극심한 한파와 거센 풍랑을 성공적으로 잘 헤쳐 나온 해였지만, 그 과정에서 앞으로 보완해 나갈 문제점들도 각 부문에서 다양하게 드러난 한 해였다. 새롭게 주자로 나선 2010년 한국 경제가 올해에 잉태된 경제 성장의 희망을 현실로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2010년에 넘겨진 가장 큰 아쉬움은 고용 없는 경기 회복이다. 국내 경기가 올해에 빠르게 회복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고용 사정은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다. 국내 취업자 수는 2009년에 7만명 정도가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 재정 지원에 의해 임시직이나마 고용 증가가 없었다면 올해 취업자 수는 연간 40만명 내외나 감소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새해에 고용 부진과 희망적인 경제 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2009년에 심화된 설비투자의 부진세를 씻어내야 한다. 지난 1998~2007년 연평균 투자 증가율은 2.6%로 1987~96년 연평균 투자 증가율 13.1%의 6분의 1 수준으로 하락했다. 이어 2008년에는 2%가 감소했고 2009년에는 무려 9% 정도가 줄어들 전망이다. 국내 경제 성장이 2010년에 4%대가 될 것인지 아니면 이보다 높은 5%대가 될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설비투자다.
외부 충격에 너무 취약한 국내 금융 시장도 문제다. 국내 금융 시장은 2009년에 연초의 동유럽 국가 부도 위기 상황에서부터 11월 두바이월드 채무 상환 유예 사건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외부 충격에 시달렸다. 이 때마다 국내 환율과 주가가 급등락하는 홍역을 치렀다. 연초 동유럽발 글로벌 금융 불안 시기에는 원화 환율이 급등하면서 '3월 경제 위기설'을 고조시키기까지 했다. 경제 규모에 비해 작은 외환 시장을 확충하고 자본 시장의 과도한 외국인 투자 비중을 국내 기관투자자 등을 통해 보완하는 일들을 서둘러야 한다. 가계부채 급증이 국내 금융 시장의 불안 요인이 되는 것을 막는 것도 신경을 써야 할 일이다. 경제위기 속에서 국내 가계부채는 지속 증가하여 2009년에 700조원을 훨씬 웃돌게 되었다. 개인가처분소득 대비 가계 금융부채 비중은 2008년에 이미 미국을 능가한 상황임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내년에 출구 전략의 시기와 정도를 신중히 결정해야 할 근본 이유다.
지표 경기가 살아나지만 체감 경기는 여전히 한기에 휩싸여 있는 점도 해결 과제다. 올해 대기업은 초반 감소 성장에서 후반에는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되었다. 중소기업은 연중 감소 성장에 머물렀다. 한국 경제가 2009년에 마이너스 성장을 모면하게 된 것은 대기업의 분발에 의한 것이었으나, 이것이 아직 중소기업으로까지 확산되지는 못한 것이다. 우리 경제가 2009년에 선방을 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정부 재정 확대였다. 그 결과 드리워진 그늘이 국가 부채 급증이다. 국내 재정수지 적자는 2009년에 51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5.0%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할 전망이다. 이는 GDP 대비 비율로 외환위기 직후에 기록했던 것과 거의 동일한 수준이다. 재정 적자로 늘어나는 국가 채무가 아직은 OECD 국가들의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최근에 들어 증가폭과 속도가 너무 빠른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국내 경제는 2009년 기축년에 소처럼 어려운 일들을 인내와 뚝심으로 잘 이겨냈다. 이를 이어받아 2010년 경인년에는 한국 경제가 호랑이의 기상으로 모든 어려움을 돌파하고 지속 성장의 길로 들어서길 기대한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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