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 어머니로 돌아가자

내일 모레면 다사다난했던 2009년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되돌아보면 많은 일들이 일어났던 한 해였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의 시민 정신은 건강한가, 우리의 가치관은 무엇이며, 각자 삶에는 진실한 그 무엇을 얼마나 간직하고 있나 자문자답할 때이다. 오늘의 태양은 이미 어제의 태양이 아니다. 이제 사람들은 한 해를 보내며 송구영신을 이야기할 것이다. 어떤 이는 1월(January)의 어원인 로마 신화 속 2개의 얼굴을 가진 야누스(Janus)를 떠올릴 것이다.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보는 얼굴과 다가오는 세월을 맞이하는 얼굴, 2개의 얼굴을 가진 새해 정월을 우리는 앞두고 있다.

지난 한 해에도 어김없이 우리 사회는 여러 분야에서 목청 큰소리들이 들려왔다. 온갖 억지주장과 법질서 파괴, 각종 안전사고, 불량음식, 지하 노래방 화재, 어린이 성추행 등등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산부인과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많은 개인 산부인과 의원이 문을 닫아 산모들이 분만할 곳을 찾아 헤매는 현실이 되었다. 저출산은 우리사 회에 불어 닥친 무서운 재앙의 시작이다. 그런 와중에 조산아 출산이 늘고 있지만 신생아실의 인큐베이터, 인공 호흡기 확보는 부족하여 대구에서 출산한 미숙아가 마산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산부인과 일부에서 낙태시술 중단을 선언하였다. 돌발적인 이 선언으로 일파만파 여태 사문화되다시피한 모자 보건법 제14조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되었다. 한 해 34만건 이상의 불법 낙태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통계 자료가 제시되었고, 그간 음성적으로 사회적 용인 내지 묵인되어 오던 낙태 시술이 수면으로 떠오르자 일부 종교단체에서 생명존중을 주장하며 불법낙태를 근절해야 한다고 동조하고 나서게 되었다.

생명운동본부는 정부는 국민 생명보호의 의무가 있으므로 생명보호 정책과 법질서를 바로 세우고 낙태를 조장하는 모자보건법 제14조를 삭제하거나 개정하라고 나서는 등 산부인과학회는 학회대로 대책방안 강구에 들어갔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아직도 저개발국가의 여성들은 올바른 가족계획, 교육을 받지 못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고 비 위생적인 시술에 노출되고 있으며 특히 숙련되지 못한 의료인에 의한, 위험한 시술방법이 자행되고 있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800만 여성이 유산 합병증으로 병원에 입원하며 300만 정도 여성은 전혀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2009년도 보고서는 낙태를 줄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올바른 피임 방법 가족계획 교육'을 들고 있다.

우리나라 불법낙태에 관한 문제는 산부인과학회 차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것으로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인간사에는 모자 보건법으로도, 생명존중 주장만으로, 낙태시술 중단 및 고발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말 못할 사정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 수준으로 현재 내전 중인 보스니아의 출산율 1.21 다음으로 1.22의 낮은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90년대들 오면서 급격히 줄기 시작하였다. 그 원인은 다양하지만 70년대 경제개발에 편승하여 시행된 과도한 가족계획 후유증과 여성의 사회진출, 독신과 만혼의 풍조등이 관여하고 있을 듯하다.

한 자녀 더 갖기 운동이 시작되었고 정부는 임신 여성에게 각종 혜택을 제시하며 당근책을 쓰고 있으나 아직 효과는 미미하다. 노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저출산 문제는 민족의 안위와 생존이 걸린 문제로 대두되어 어떠한 희생과 대가를 치르더라도 해결해야 될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 정부가 내어 놓는 당근이나 사회적 캠페인도 중요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것은 여성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해야 하는 차원에서 마땅한 방법이 없겠는가 생각해 본다.

물론 여성들이 안심하고 아기를 가질 수 있는 건강한 사회적인 분위기 조성은 우선적 기본 사항이다. 동시에 어려운 사회적 여건만 탓하지 말고 적극 동참하여 여성들 스스로 여성 본연의 자세를 회복하고 가치관을 바꾸어 보편적인 어머니 고유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일은 어떨까. '어머니 없는 사회'는 '아버지 없는 사회'보다 훨씬 더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2010년을 맞이하는 세모의 문턱에서 수문장이 되어 세월의 문을 지키며 과거를 되돌아보는 야누스의 낡고 거짓된 얼굴을 벗어던지고 여성들이여, 누이들이여, 느긋한 독신생활과 안정된 직장생활에 안주하지 말고 국가와 자손만대 번영을 위하여 다산이 미덕이 되는 시대를 열어가시라. 하루속히 진정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어머니로 돌아가자.

윤성도 계명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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