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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 루이 15세의 애첩 퐁파두르

역사속인물)루이 15세의 애첩 퐁파두르 후작 부인

첩(妾)의 신분으로 오래 권세를 누리기는 어렵다. 나이가 들면서 신망을 잃거나 젊은 첩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루이 15세의 애첩 퐁파두르 후작 부인(1721~1764'본명 잔느 앙뚜아네트 푸아송)은 죽을 때까지 총애를 받았으니 속된 말로 '조강지첩'이었다. 뛰어나게 예쁜데다 교양인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우아하고 날씬했고 계란형 얼굴에 코는 오똑, 입술은 매력적이었다. 백옥같은 피부가 두드러졌는데 현재까지 그녀의 화장 비법이 회자된다.

1721년 오늘, 부유한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나 귀족 같은 교육을 받았고 사촌과 결혼해 딸을 낳았다. 1744년 루이 15세의 눈에 띄어 이혼하고 귀족 칭호와 함께 궁중으로 들어왔다. 왕의 비서실장을 하면서 "나의 시대가 왔다"는 일성과 함께 각료를 임명하고 전쟁을 지휘하기도 했다. 돈을 물 쓰듯 했는데 현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 궁도 그녀의 저택 중 하나였다. 정치는 엉망이었지만 문예진흥에는 큰 족적을 남겼다. 만년엔 미인들을 모아놓고 왕에게 고르도록 할 정도로 권력욕이 대단했다. 43세에 폐결핵으로 죽자, 한 독설가는 묘비명을 이렇게 썼다. '20년은 처녀로, 15년은 창녀로, 7년은 뚜쟁이였던 여인, 여기에 잠들다.'

박병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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