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보다 실력이 더 중요하죠."
과도한 학력 경쟁과 이로 말미암은 인성교육의 후퇴, 대학 진학을 향한 입시 '몰빵' 교육….
개인에 대한 평가 척도를 대학 졸업장으로 삼는 사회 분위기는 교육의 목표를 상실시켜왔다. 명문대 간판이 성공의 보증수표로 인식되면서 미래의 꿈을 그려야 할 학생들은 학교와 학원의 책상에 갇혀 지내고 있다. 하지만 대학 졸업자들만 양산한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원하는 일자리를 챙겨주지 못하고 있다. 반면 현장의 전문 인력은 부족해 산업기반이 붕괴 위기의 순간을 맞고 있다. 학벌보다 실력을 인정하는 사회로의 전환이 절실한 현실에 맞춰 전문계고는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2010년 전문계고 입학을 결정하고 당당한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 중3 학생들의 포부를 들어봤다.
◆시승우(안심중3)군 경북기계공고 진학
"제 꿈은 삼성과 같은 세계적 기업의 최고경영인이 되는 겁니다."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 시승우군은 망설임 없이 전문계고를 선택했다. 중학교 내신성적 7%. 일반계고에 진학해 명문대 진학을 노려볼 만한 실력이지만 시군은 자신의 꿈을 조금 더 빨리 실현하는 길로 마이스터고를 선택했다.
"책상에 앉아 문제를 풀고 그 점수에 맞춰 꿈을 정하고 싶진 않았어요. 이론을 배우고 현장에서 부딪치면서 내가 꿈꾸는 일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 싶었습니다."
시군은 마이스터고가 적성과 소질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시간과 전문지식을 집중적으로 배울 기회를 줄 것으로 믿고 있다. 시군 역시 중학교 3학년초까지만 해도 남들처럼 일반계고에 진학해 대학을 가는 일반적 코스를 생각했다. 하지만 입시 경쟁에 매달려 숨이 막히는 고교생활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뭔가를 만드는 게 좋았어요. 전기회로를 연결해 전구에 불이 들어 왔을 때는 정말 신이 났어요. 학창생활 역시 하고 싶은 것을 맘대로 하며 보내고 싶었어요."
마이스터고를 간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마뜩잖은 시선을 보냈다. 부모님은 가고 싶은 길을 택하라며 찬성했지만 친구들은 왜 하필 전문계고냐며 안타까워했다. "아직 기술직은 사회적으로 대접 못 받는다는 편견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그걸 깨고 싶어요."
기술을 익히고 실력도 쌓아야 하는 마이스터고. 시군은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해야 하는 교육과정이 힘들게 느껴지지만 정말 열심히 하고 싶다고 했다. 빨리 사회에 나가 스스로 돈을 벌고 싶다는 시군.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더 많은 도전의 기회를 얻기 위한 투자라고 했다.
◆이아름(대평중3)양 상서여자정보고 호텔조리과 진학
"요리에 희망을 담고 싶어요."
이아름 양은 깔끔한 유니폼을 입고 최고의 요리작품을 만들고 싶다. 자신이 만든 요리를 전 세계인이 먹는 꿈을 날마다 꾼다. 조금 더 빨리 꿈을 이루고 싶어 상서여자정보고 호텔조리과를 선택했다.
"일반계고에 진학하면 공부에 매달려야 하잖아요. 국어·영어·수학 공부를 따라가다 보면 정말 하고 싶은 요리 공부는 못할 것 같아요. 학교에서 당당하게 요리를 배우는 시간을 생각만 해도 즐거워요."
이양은 요리사의 꿈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키워왔다. TV에 등장하는 주방장들이 멋있어 관심을 갖게 됐지만 한때의 호기심에 그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끝에서 빚어지는 마술 같은 작품들의 매혹에 점점 빠져들게 됐다. 각각의 재료들이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낸다는 게 너무 매력적이었다.
진로를 선택하는 순간, 일반계고 진학을 권유하는 선생님과 친구들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신 20%. 전문계고에 가기엔 아깝다는 이야기도 들렸고 차라리 공부를 열심히 해 이름난 대학에서 요리를 전공하는 게 낫지 않느냐는 권유도 있었다.
"대학에 진학하기보다는 취직하고 싶어요. 돈을 버는 것도 필요하지만 제 요리를 많은 사람에게 맛보여준다는 게 너무 신날 것 같아요."
유명 호텔과 산학협력을 통해 현장 적응력을 기르고 지식과 기능을 두루 갖춘 조리 분야 최고 장인을 육성한다는 호텔조리과 홍보 책자를 보는 순간 이양은 자신의 꿈을 앞당겨 실현해 줄 가장 매력적인 곳이라고 판단했다. 다양한 동아리 활동도 마음에 들었다. 일반계고를 선택했다면 후회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양. 벌써 내년 3월 등교시간이 기다려진다고 했다.
◆황운용(청구중3)군 대구공업고 전자기계과 진학
"기능올림픽 제패와 대학 진학, 두 마리 토끼를 잡을래요."
황운용 군이 전문계고 진학 의사를 밝히자 부모님의 반대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공부가 뒤처지는 것도 아닌데 왜 힘든 길을 가려 하느냐며, 남들처럼 공부해서 대학에 가길 바라셨죠. 아들이 기술자의 삶을 살길 원치 않으셨습니다."
황군은 진로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했고 어떤 목표를 가졌는지 부모님께 차근차근 설명했다. 내신관리가 수월하고 동일계열 특별전형 등 대학 진학에 유리한 점이 많을 뿐만 아니라 전문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결국 부모님은 자식의 뜻을 꺾지 않았다. 아들의 판단을 믿는다는 말로 허락했다. 친구들도 황군을 이해하지 못했다. "전문적인 기술을 배우느라 학과 공부가 일반계고 학생보다는 뒤처지겠지만 모자라는 부분은 밤을 새워서라도 따라갈 거예요. 3년 뒤 저의 판단이 절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겁니다."
황군은 중학교 시절 내내 남들보다 조금 더 열심히 공부한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1등을 하진 못했다. 내신성적 21.8%. 평범한 일반계고 학생이 되기보다는 전문계고에서 최고가 되고 싶은 욕망이 컸다. 앞으로 펼쳐질 고교생활에 대한 기대도 많다.
"전자기계를 발명해 세계가 인정해주는 회사의 CEO가 되고 싶어요."
이론과 현장 경험을 쌓고 나서 대학에 진학해 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하고 싶다는 황군은 "전문계고 졸업장이 아직은 걸림돌이 될지 모르지만 남들이 인정해주는 실력을 갖게 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성일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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