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사 김성두(59·대구시 중구 아담 이용소)씨는 호적 나이보다 네 살 많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1947년생으로 63세다. 경북 구미시 무을면(옛 선산군 무을면)에서 태어났는데 1970년대까지 버스가 하루에 2대밖에 들어오지 않던 산골 동네였다. 완행버스는 구불구불한 길을 둘러 둘러갔는데 명절 때 대구에서 고향에 가는데 6시간 가까이 걸렸다.
당시엔 아이를 낳고 4년이 지나 출생신고하는 것이 별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산골짜기 사는 사람들은 겨우 출생신고나 하려고 먼길을 갈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게다가 일단 홍역을 치러야 죽지 않고 살 아이로 보았다. 홍역이 덮치면 마을 아이 10명 중 3, 4명은 죽던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아장아장 걷던 아이가 뛰어다닐 무렵이면 마을 이장한테 출생신고를 부탁했다. 굳이 태어난 날을 소급해서 밝힐 것도 없었다. 한 푼이 아쉬운 사람들에게 벌금은 호랑이만큼 무서운 것이었다. 그래서 이장이 신고하는 날이 태어난 날이 됐고, 마을에는 같은 날 태어난 아이들이 드물지 않았다.
◆깐깐한 이용사 자격시험
김성두씨는 1965년 경북 선산에서 이발을 시작했다. 선산 군청 앞 '선주 이용소'에서 3년간 기술을 배웠다. 기술을 배우던 시절이라 월급은 없었다. 요즘은 기술 가르쳐준다는 이유로 월급을 안 주면 욕을 하겠지만, 당시에는 그랬다. 그때만 해도 이발소에서 3년 이상 실무를 배웠다는 증명이 있어야 (보건증 발행 3년) 이용사 자격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졌다.
도지사와 특별시장이 이용사 면허를 내주던 때였고, 시험은 1년에 2회뿐이었다. 실기뿐만 아니라 필기시험도 쳤다. 초등학교 전과처럼 두꺼운 책을 달달 외워야 했다. 소독과 환경위생, 일반상식 등 평균 60점이 넘어야 했는데 필기시험 통과가 굉장히 힘들었다. 당시 경북도내에서 한번 시험 칠 때마다 평균 1천300여명이 응시했는데 합격자는 300명이 채 안 됐다.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해 자기 이름만 겨우 쓰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발 솜씨는 나무랄 데 없었지만 늘 필기시험에 고배를 마시는 바람에 무면허로 일하는 사람이 많았다. 요즘처럼 이·미용 학원을 다니면 거의 모든 사람이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과 사뭇 달랐다. 김성두씨는 1965년 이발을 시작해, 1969년에 시험에 합격했다. 면허를 취득한 지 40년이 지났다.
◆이발소를 찾지 않는 까닭
김성두씨는 35년 전 계산동에 개업할 때부터 이발소 이름을 '아담 이용소'라고 지었다. 머리를 예쁘게 깎겠다는 마음과 소박하게 살겠다는 뜻을 담았다. 건물 밖에' 아담 이용소'라는 간판이 붙어있는데도 손님들은 흔히 '계산 이용소'라고 부른다. 계산동에 있으니 으레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삼색기둥 이발소 사인'의 강렬한 이미지도 한몫을 했다. 전 세계 이발소의 공식 간판인 삼색(흰색 청색 붉은색) 기둥이 워낙 분명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굳이 개별 이발소의 이름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모양이다.
김성두씨는 60년대, 70년대까지 만해도 남자라면 누구나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았다고 했다. 명절 앞이면 밤늦도록 손님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늘어서 있었고,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오는 경우도 흔했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남학생들은 거의 100%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았다. 심지어 여학생들도 단발머리를 자르기 위해 이발소를 찾던 시절이었다. 평일 손님이 20명이 넘었다.
그러나 80년대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여학생은 물론이고 남자들도 하나 둘 이용실로 떠나 미용실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발소 손님이 미용실로 옮아간 것은 '퇴폐 영업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1970년대 말부터 퇴폐영업소가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퇴폐 영업소에서는 당시 손님 한 사람당 3만원 정도를 받았어요. 퇴폐 영업이 돈이 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이발소 손님을 잃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봐요."
김성두씨는 개인적 의견임을 전제로 몇몇 퇴폐 이발소가 이발소 전체의 이미지를 훼손했다고 말했다. 퇴폐 영업소가 생겨나니 아이들 손을 잡고 왔던 아버지들이, 머리를 깎으러 왔던 중·고등학생들이 떠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떠난 남학생들이 미용실을 찾기 시작했고, 성인이 된 뒤에도 자연스럽게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게 됐다는 것이다.
요즘은 이발소에는 중·고등학생은 거의 없다. 한 달에 한 두명 오면 많이 오는 것이다. 30, 40세 이상 된 남자들만 온다.
◆나의 인생, 나의 직장
이발소 손님이 줄었으니 생활이 될까? 김성두씨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가난하지 않아요. 이 나이에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아요. 두 남매 공부 다 시키고, 그 중 한 아이는 혼인도 시켰어요. 앞으로도 얼마든지 일할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직장입니까."
그는 이른바 '퇴폐 영업붐'이 일던 시절에도 곁눈질하지 않았다고 했다. 인생을 '한탕'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수입은 먹고살 정도면 충분하다고 믿었다. 한번 퇴폐 영업에 길들여지면 착하게 머리 깎아 번 돈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꾸 욕심을 낸다. 욕심을 내다보니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착하게 머리를 깎아 자식들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켰으니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아담 이용소'는 오래된 곳인데다 그의 솜씨를 높아 사 단골 손님이 많다. 하루 손님 10∼15명 중에 반이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이다.
"초창기에는 기계로 민 흔적 지우는데 급급했어요. 한 10년 지나니까 손님이 딱 들어서면 어떤 스타일로 깎아야 할지 알겠더라고요."
김성두씨를 찾는 단골들은 '어떻게 깎아 달라' 주문하지 않는다. 그저 맡겨두면 알아서 척척 깎아 주기 때문이다. 굳이 한다는 말이 "이제 좀 길러야겠어" "좀 짧게 깎을까" 정도가 전부다.
◆내 머리는 내가 깎아
이용사들의 머리는 누가 깎을까.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김성두씨는 스스로 머리를 깎는다고 했다. 가위와 빗을 들고 거울에 비춰가며 뒷머리까지 깔끔하게 손질한다. 스스로 머리를 깎기 시작한 게 20년이 넘었다. 이용사 중에는 스스로 머리를 깎는 사람들이 많다.
"스님들 중에도 직접 자기 머리를 깎는 사람이 많습니다. 요즘은 기계가 좋고, 스님들 머리는 짧으니 어려울 것도 없지요.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도 이제는 옛말입니다."
흔히 이용사라고 손이 아플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손에 힘을 빼고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니 하루종일 깎아도 손가락 피로한 줄은 모른다. 종일 서서 일하니 오히려 다리가 아프다.
잃어버린 남자 손님들을 끌기 위해 이발소 연합회는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다. 기술 세미나를 열어 유행을 알리고, 젊은이의 취향도 파악한다. 이전보다 퇴폐 이발소도 많이 줄었다. 점점 더 줄어가는 추세다. 덕분에 30, 40대를 중심으로 젊은 손님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예전에는 남자 머리는 '바리깡'으로 짧게 깎았지만 요즘은 남자 머리 스타일도 다양하다. 스포츠 머리, 하이칼라 머리(군인 장교 같은 머리, 상고머리와 비슷하다), 장발, 정장 머리 스타일 등. 어떤 스타일이라도 가격은 7천원이다. 면도를 하면 8천원, 염색까지 하면 1만 3천원이다. 20년 전 요금 그대로라고 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 이용소 삼색등 왜 빨강·파랑·흰색일까
이용소에 가면 빙글빙글 돌아가는 삼색등을 볼 수 있다. 빨강은 동맥, 파랑은 정맥, 흰색은 붕대를 의미한다. 이는 이발이 미용이 아니라 외과수술을 위한 정지작업에서 비롯됐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김성두씨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외과 수술을 위해서 머리카락을 잘랐다. 당시에는 외과의들이 수술하기 전에 머리카락을 먼저 잘랐다. 그래서 외과의가 곧 이발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의학이 발달하면서 이발소와 병원이 분리됐다. 1804년 프랑스인 쟝 바버가 최초의 이용사가 되면서 이발소와 병원은 독립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895년(고종 32년) 김홍집 내각이 단발령을 시행한 후 이발이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안종호라는 사람이 왕실 최초의 이발사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초창기 우리나라 이용사는 모두 일본 기술자한테서 배웠다. 그래서 이발 용어에는 일본말이 많았다.
이용 위생독본에 따르면 사람의 머리카락은 하루에 약 0.3mm씩 자란다. 한 달에 대략 1cm 정도씩 자라는 것이다. 비교적 짧은 남자 머리카락의 경우 1cm가 자라면 다소 후줄근해진다. 한 달에 한번씩 머리를 깎는 사람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영업직이나 외근직의 경우 20일이 조금 지나면 머리를 깎는 사람이 많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탄핵 반대, 대통령을 지키자"…거리 정치 나선 2030세대 눈길
젊은 보수들, 왜 광장으로 나섰나…전문가 분석은?
민주, '尹 40% 지지율' 여론조사 결과에 "고발 추진"
윤 대통령 지지율 40%에 "자유민주주의자의 염원" JK 김동욱 발언
"尹 영장재집행 막자" 與 의원들 새벽부터 관저 앞 집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