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사자성어

연말이 되면 다사다난했던 한 해의 삶을 사자성어로 표현하는 것을 본다. 사자성어는 주로 중국의 고사에서 유래하여 비유적인 내용을 담은 함축된 글자를 말하는 것인데, 한 시대의 정치적 상황이나 사회상을 빗대어 풍자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로 이해되고 있다. 네 글자로 이루어진 단어는 교훈, 경구, 비유, 상징어 등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다양한 상황과 관점을 읽을 수 있어 흥미롭다.

직장인들이 올해 자신들의 처지를 표현한 것으로 선정한 사자성어는 '구복지루(口腹之累)'라고 한다. 이 단어는 먹고사는 걱정을 뜻하는데, 2009년 여러 가지로 힘들고 답답하기만 했던 민초의 심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대학 교수들은 율곡 이이의 정치철학서로 알려진 '동호문답'에 나와 있는 '방기곡경'(旁岐曲逕)을 꼽았다. '제왕의 귀를 막아 곧은 길을 피해 굽은 길로 가게 하는 소인'을 나타내는 이 말은 정당하지 않은 그릇된 수단을 동원하여 억지로 일을 추진하는 상황을 빗댄다.

교수들은 이 밖에도 중강부중(中剛不中), 갑론을박(甲論乙駁), 서자여사(逝者如斯), 포탄희량(抱炭希凉) 등을 두고 고민하였다고 한다. 서로 자신의 정의로움을 주장하기만 하고 중도에 이르지 못하며, 소모적인 논쟁만 거듭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 보인다. 명분에 맞는 행동이 따르지 못하는 사회가 발전할 수 있을까? 두 해 전에는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인다는 뜻의 자기기인(自欺欺人), 작년에는 병을 숨기면서 의사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진 호질기의(護疾忌醫)가 선정된 것을 떠올리며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는 자신과 타인에 대해 정직하지 않고,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서로 화합할 수 없는 것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흘러도 편법과 부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고 있다.

서민들이 먹고사는 일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회적 갈등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에 머물러 있는 동안 대통령 소속 사회통합위원회의 공식 출범 소식이 들렸다. 우리 사회의 내부 갈등을 풀어나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계층, 이념, 지역, 세대 간 뿌리 깊은 갈등을 해소해야 하는 과제를 두고 실질적 정책을 제안하는 것을 위원회의 역할로 명시하였다. 그런데 우연이었을까? 위원장으로 임명받은 분의 취임 인사에서 두 가지 사자성어가 소개되었다. 소통을 강조하는 사통팔달(四通八達)과 원칙에 입각한 화합의 뜻이 담긴 화이부동(和而不同)이었다. 상하좌우의 의견을 존중하고 소외되는 지역이 없도록 하자는 요구,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중에 타인과 잘 지내면서도 원칙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결의를 함축적으로 전할 수 있는 말이다.

사회통합의 가치를 누구나 중요하다고 여기지만, 결코 쉬운 작업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은 구성원들의 진지한 자기성찰과 행동으로 이어지는 뜨거운 반성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옳다고 주장하기보다 작은 잘못이라도 찾아내어 책임을 지려고 할 때만 사회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 사회학자 파슨스는 사회 구성원들이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권리이자 동시에 의무로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이러한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권유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은인자중(隱忍自重)하며 일단 살아남아야 겠으니 다음 기회를 두고 보자고 다짐하거나, 세월이 흘러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난중지난(難中之難)을 한탄하고 있다.

내년에는 우리 사회가 여러 가지 모습을 한 약자들의 어려움을 진정으로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역에서도 올해 경제적 난국을 극복할 수 있는 호재를 만나 기뻐하는 중에 뜻하지 않은 장벽들이 등장하면서 노심초사(勞心焦思)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준비된 자에게는 어려움이 없다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을 기억했으면 한다. 고단한 현재보다는 다소 멀리 느껴지더라도 희망찬 미래를 생각하며 견디게 하는 대기만성(大器晩成)의 꿈은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함으로써 하늘을 움직일 수 있는 지성감천(至誠感天)의 노력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믿는다.

이미원 대구경북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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