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힘든 세상/어디 하나 기댈 데도 없는 이 세상/너뿐이다, 트로트/아무리 얕잡아 봐도 똑바로 봐도/술 취하면 똑같다 뱃속에 파도/일렁일 때마다 느려 술잔을 타고/팔다리는 나불대 마이크를 잡고/딴따라따따따 트로트가락에 맞춰서/움직여 네 박자/땡벌같은 하루의 유일한 동반자/술 깨며 떠난 사랑은 나비인가봐/갈대처럼 휘고 잡초처럼 밟힌 내 인생살이/술 한 잔에 울고 노랫가락속에 웃는 내 인생아/나의 트로트. 남성 3인조 힙합(Hip Hop)그룹인 에픽하이(Epik High)의 노래 는 정작 트로트 세대들이 따라 부르기에는 쉽지 않은 노래다. 하지만 랩과 비트가 어우러져 만드는 리듬에 가사의 절묘한 조화는 힙합이라는 장르가 결코 생소한 것이 아님을 느끼게 한다. 사실 음악 감상을 취미로 한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클래식, 즉 서양의 고전 음악만이 감상의 가치가 있는 것처럼 말한다. 더구나 트로트를 뽕짝이라고 부르며 그것을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이식된 일본 엔카의 아류로 취급하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에픽하이의 노랫말처럼 세상 사람들은 오늘도 여전히 술 한 잔에 울고 노랫가락에 웃으며 트로트에 기대고 있다. 그것은 문화라는 것이 전통과 비전통의 문제가 아니며 본류와 아류의 문제도 더더욱 아니며 보다 중요한 것은 삶의 저변을 담은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아주 오랫동안 우리 사회는 대중문화를 마치 천박한 것처럼 치부하면서 때로는 정치적 해석으로 이용해왔다. 따라서 대중문화는 철저히 연구대상에서 소외되어왔다. 이런 의미에서 손민정의 '트로트의 정치학'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어쩌면 자신은 이 연구를 진행하기 전까지 엘리트주의의 노예였노라고 고백하는 저자의 말에는 가슴에 트로트 한 곡씩은 다 품고 살면서도 표현하기에는 어색한 지식인들의 허상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저자는 우리의 트로트가 미국의 컨트리 뮤직, 일본의 엔카, 터키의 아라베스크, 이스라엘의 무지카 미즈라히와 같은 서민의 노래임에 주목한다.
"서민은 일상적인 노래를 통해 세상을 읽으려 하고 이해하려 하며, 계속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 나간다. 그래서 서민의 음악은 사람들에게 느낌뿐만이 아니라 생각하게도 만든다. 가슴속에 파고드는 감동이라는 것은 느낌과 생각 그 어떤 것 하나라도 홀대하게 된다면 존재하기 힘들다."
트로트의 존재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트로트의 정치학'은 박사 논문을 단행본 형식으로 재편성한 것으로 에픽하이의 '트로트'가 쉽게 따라 부를 수 없는 것처럼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허위의식을 통렬하게 지적하고 일깨운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런 연구들의 지속적인 성과들이야말로 세상의 간극을 줄일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힙합이 트로트를 노래하는 것은 교양이라는 허울 속에 갇힌 세상을 비웃는 까닭이다. ~아무리 얕잡아 봐도 똑바로 봐도 술 취하면 똑같다~ 에픽하이의 노랫말이 이토록 가슴에 사무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삶의 고통마저 정직한 노래 트로트는 그래서 아름답다.
여행작가'㈜미래티엔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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