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새해엔 삽질 좀 합시다

이달 22일 토지주택공사(LH) 대구경북본부에서 LH 공사를 수주한 대형건설사 임원들과 지역 건설단체 대표들이 간담회를 가졌다. 지역 건설단체 대표들은 "토지주택공사 등 국가 공기업이 지역에서 발주하는 공사는 대구시 발주 공사보다 금액이 많지만, 지역업체 수주 비중은 20%대에 불과하다. 반면 대구시 발주 공사의 경우 지역 업체 수주율은 60%대에 이른다. 지역업체의 참여 기회를 늘려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LH와 대형건설사 임원들은 "지역업체가 수도권업체에 비해 가격경쟁력, 시공능력 등이 떨어져 참여가 저조할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이날 지역 건설단체 대표들은 "상생(相生)을 위해 노력하자"는 얘기만 듣는 데 만족해야 했다.

MB정부의 비판론자들은 4대강 살리기사업 등으로 대한민국이 '토건(土建) 국가'로 치닫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대구 등 지방에선 딴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지방 건설업체들은 '토사'(土死)할 지경이다. 대구업체 대부분은 아파트경기 침체(미분양 아파트 물량 전국 2위)로 주택사업을 접고, 공사 수주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수주는 하늘의 별 따기다. 한 건설업체 임원의 하소연은 씁쓸하다. "대구의 큰 공사는 서울의 대형업체가 맡고, 하도급마저도 서울에 있는 협력업체들이 거의 싹쓸이하고 있습니다. 지방업체들이 재무구조가 좋지 않고, 시공능력은 떨어지고, 가격경쟁력도 없다는 것이죠. 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논리라면 약자는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대구의 건설업체들은 '건설 3인방'(청구'우방'보성)이 그립기만 하다. 있을 땐 몰랐는데, 없고 보니 그 그늘이 컸다는 것이다. 동네에 '큰형님'이 있을 땐 기술도 전수하고, 동생들에게 밥벌이도 챙겨줬다. 그러나 '큰형님'이 사라진 지금은 '전국구 형님'들이 휩쓸고 다니며, 쓸만한 몇몇만 골라서 일을 줄 뿐이다.

2008년 기준 대구에서 발주된 공사 중 지역업체 수주 현황을 보면, 지역건설업의 실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 해 동안 대구에서 1천869건, 4조176억원 규모의 공사가 발주됐는데, 대구업체의 수주량은 건수로는 58%, 금액으로는 28%에 불과했다. 반면 역외 업체의 수주실적은 건수 42%, 금액은 72%에 이른다. 대구시(도시공사 포함)를 제외한 공공발주의 경우 역외 업체의 수주금액은 전체의 80%나 된다.

승자독식(winner-takes-all'勝者獨食)이 우리 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로 똬리를 틀고 있다. '경쟁력 강화'란 이름으로 포장된 이 논리는 신자유주의에서 파생된 '배려 없는 게임룰'이다. 이념논쟁을 하자는 게 아니다. 현실이 그렇다. 오죽하면 TV 개그프로그램에서 개그맨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풍자할까?

턴키발주(설계'시공 일괄발주)로 이뤄진 4대강 살리기 사업 역시 승자독식의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턴키발주는 최상의 시공물을 위해 최고의 기본설계를 제시한 건설사에게 실시설계권과 시공권을 주는 제도이다. 하지만 이 제도는 서울과 지방,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실제 전국 상위 11개 대형건설사가 4대강 사업의 15개 공구를 모두 수주했다. 지방의 건설사들은 이 중 25%의 지분을 놓고 대형건설사의 컨소시엄에 참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했다. 조달청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턴키계약액은 2000년 8천183억원이었으나, 올 9월 말 현재 4조3천208억원으로 5배 늘었다. 전체 발주물량 중 턴키 비중은 2000년 11.7%에서 올 9월 말 27.7%로 2.4배 증가했다. 당연히 지방 중소업체의 설자리는 점점 줄고 있는 것이다.

건설업은 전후방 연관효과가 높은 업종이다. 대구의 실업률(4.3%, 10월 기준)이 전국 평균(3.2%)를 웃도는 것도 건설불황과 관련 있다. 대구에서 건설산업은 총생산의 9%(관련산업 포함 15%)를 차지하며, 고용창출 효과가 다른 산업에 비해 크다. 건설불황은 지역경제 불황의 원인이 된다. 다행히 정부가 내년부터 턴키 발주를 줄이기로 하는 등 건설선진화방안을 시행할 예정이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방건설산업을 살리기 위해선 공공발주에서 지역업체 참여 확대를 보장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새해엔 지역업체의 우렁찬 삽질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

김교영 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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