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활의 고향의 맛]말

쌈 싸먹고 데쳐 먹고…혀 끝 아련하게 남는 향기

우리 말 사전을 찾아보면 '말'은 여러 가지 뜻으로 갈라져 있다. 우선 동물인 말(馬)이 있고, 언어인 말(言)이 있는가 하면 곡식의 양을 가늠하는 말(斗)이 있다. 그러나 지금 말하려는 말은 한적한 시골의 못이나 저수지에서 자라고 있는 물풀(水草)이다.

어릴 적 동네 어른들이 채취해온 말은 겨울철 별미 음식이었다. 맑은 못에서 자란 말은 푸른 기운이 돌면서 연한 암갈색을 띠고 있다. 풀의 길이가 얼마나 긴지 치렁치렁한 처녀들의 삼단 머릿결 같고 맛은 꼭 집어 어떤 맛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묘한 향을 지니고 있다.

##줄 옮기는 잔심부름 후 반찬거리 얻어

말을 채취하러 갈 땐 장정 서넛이 바지개를 지고 나선다. 현장에 도착하면 두 패로 나눠 긴 줄을 못 가로 돌려 이쪽과 저쪽에 마주 선다. 그런 다음 말 채취기구인 주물로 된 대형 얼개 빗같이 생긴 것을 못 속에 던져 넣어 이쪽은 풀어주고 저쪽은 당기면 긴 이빨처럼 생긴 사이사이에 말이 걸려 나온다. 간혹 동리 고샅에서 하릴없이 놀고 있다가 말꾼들을 따라나서 줄을 옮기는 잔심부름을 하게 되면 저녁 반찬으로 안성맞춤인 말 한 단쯤은 거뜬하게 얻어 올 수 있었다.

하루는 "공부하고 있어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저버리고 토요일 오후 내내 말을 치는 어른들을 따라 다니다가 옷을 다 버린 채 말 한 단을 얻어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의 두 눈에 노기가 서리면서 부엌의 부지깽이가 거꾸로 서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잘못했습니다"고 아무리 빌어도 소용이 없었다. 맞을 만큼 맞아야 했다. 죄와 벌은 서로가 용서할 수 없는 그런 사이다.

아들은 매질의 아픔에 울고 어머니는 아들의 아픔을 대신할 수 없어 가슴이 아파 함께 울었다. 어머니는 한참을 울고 나시더니 중대 결심을 한 듯 "저 말을 거름 무더기에 묻어라"고 하셨다. 너무너무 아까웠지만 거역할 수 없었다. 못에서 돌아오면서 내내 떠올린 것이 말 한 단 손에 쥐고 웃는 어머니의 얼굴과 풍성한 말 반찬 저녁 식탁이었는데 "묻어라"는 한 마디에 모든 것이 허사가 되고 말았다.

어머니는 아까운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결정을 내리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린 것을 보면 '먹느냐 아니면 묻느냐'는 햄릿 식 고민을 하신 모양이다. 그러나 그날 저녁에 있었던 말 한 단을 두엄 더미에 묻는 그 비정한 교육이 아직도 나를 은연중에 지배하고 있으니 삼십대 청상인 어머니도 선지식의 반열에 들 것 같다.

초등학교 삼사 학년일 당시 동네 주변에 있는 못은 정말 깨끗했다. 농약도 흔하지 않았으며 못물을 오염시킬 중금속 자재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산천에 업혀 사는 동식물들은 한결같이 싱싱하고 건강했다. 못에서 잡은 물고기는 물론 나물과 풀들도 특별한 독초가 아니면 아무리 먹어도 해가 되지 않았다. 못에서 건져 올린 말도 우물물로 한 번쯤 헹궈 식탁에 올리면 맛은 그만이었다.

##한번 헹궈 식탁에 올리면 그만

고향에서 먹었던 말의 요리방법은 너무나 간단했다. 바가지에 담겨 상위에 오른 말을 쌈으로 먹는 것이 첫째요, 그 다음은 큰 양푼에 말을 썰어 넣고 양념장을 끼얹어 가족 모두의 밥을 넣어 비빈 후 함께 먹으면 다른 반찬이 크게 필요 없었다. 그러나 못물이 깨끗하지 못해 말의 청결도가 약간 떨어지는 것은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비벼 먹으면 그것 또한 별미다. 데친 말은 생것보다 훨씬 강한 향내가 났다.

생활하수로 못이 오염되어 시골에서도 말을 채취하지 않는다. 연전까지만 해도 구이 집에서 간천엽을 넣은 말 무침을 더러 맛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구경하기가 힘들다. 사라져 곁에 없는 것들은 그리운 법이다. 내 혀끝 어디엔가 남아 있는 어릴 적 말맛은 연줄이 끊겨 가뭇없이 사라진 연처럼 아쉽고 애통하다. 그건 어쩌면 희미한 옛사랑, 그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아련하면서 황홀하다. 곡(曲)을 잃어버린 세레나데처럼 그렇게.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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