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판에 쓰는 편지
반기령
나는 짝꿍 바꾸는 날이 정말 싫었어. 차라리 짝꿍 같은 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짝꿍 바꾸는 날은 아침부터 교실이 시끌벅적해. 그런 날은 단짝 친구들끼리 꼭 붙어있어. 어떤 아이들은 제발 원하는 짝꿍하고 앉게 해 달라고 기도까지 하던 걸? 유치하게 말이야.
우리 반은 제비뽑기로 짝꿍을 정해. 한 번은 남자가 종이를 뽑고, 다음번에는 여자가 종이를 뽑지.
그날은 여자가 종이를 뽑는 날이었어. 남자 아이들은 자리에 앉아 여자 아이들이 제비뽑기 하는 모습을 지켜봤어.
여자 아이들은 두 손을 꼭 마주잡고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자기 차례가 되면 눈을 질끈 감고 상자에 손을 넣었어. 그리고 침을 한 번 꼴깍 삼킨 다음 상자에서 손을 꺼냈지. 종이를 꼭 쥔 손은 교실 뒤편으로 가서야 펼쳐봤어. 종이를 펼친 아이들은 폴짝폴짝 뛰면서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한숨을 내쉬거나 울상을 짓기도 했어.
나는 제발 내 옆자리를 뽑은 애가 울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지난번 내 짝꿍이 그랬던 것처럼….
그 다음은 여자 아이들이 남자 아이들 옆으로 가서 앉을 차례야. 내가 제일 싫어하는 시간이기도 하지. 지금까지 내 짝꿍이 된 아이는 제일 늦게 내 옆자리로 와서 발과 몸은 책상 귀퉁이로 향하게 한 다음 의자에 엉덩이를 반쯤만 걸터앉았어. 언제라도 누가 부르면 바로 튀어 나갈 자세로 말이야. 그 모습을 지켜볼 때는 저절로 주먹이 꼭 쥐어졌어.
네가 옆에 앉는 소리가 날 때에 나는 일부러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어. 그 동안의 짝꿍들이 모두 원하는 거였으니까. 그런데 다른 때 하고는 달리 의자를 거칠게 빼는 소리도, 가방을 세게 내려놓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
나는 살짝 고개를 돌려 너를 봤지. 넌 똑바로 앉아서 가방을 열어 책을 꺼내고 있었어. 의자를 책상 끝으로 끌고 가지도 않았고, 발을 오른쪽으로 내민다거나 엉덩이를 반만 걸치지 않고 아주 똑바로 앉아 있었지.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어. 그리고 조금 기분이 좋아졌어. 2교시 과학시간에는 쪽지 시험을 봤잖아. 넌 내 시험지를 가져가서 채점을 하고는 시험지를 돌려주면서 이렇게 말했어.
"너 왼손으로도 글씨 되게 잘 쓴다."
나는 갑자기 얼굴이 뜨거워졌어. 한 번도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어.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머리를 마구 굴리다가 불쑥 이렇게 말해버렸어.
"넌 공을 잘 차잖아."
너는 그냥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어. 그때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지 않는 방법도 있다는 걸 알았어.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이었다는 건 알지만, 네가 공을 잘 차는 건 사실이잖아. 지난 번 체육시간에 발야구를 할 때 네가 찬 공이 정말로 담장을 넘기는 줄 알았어. 공이 멀리 날아갈 때 반 아이들은 깜짝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움직이지도 않았어. 그러다가 공이 구름사다리를 맞히고 툭 떨어지자 누군가 "홈런이다"라고 소리쳤고,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들려왔지.
너는 다른 아이들처럼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단짝 친구에게 달려가지 않았어. 단짝 친구가 없는 것 같기도 했어. 그렇지만 넌 나처럼 외톨이는 아니었어. 쉬는 시간마다 네 자리에 와서 말을 거는 친구들이 있었으니까. 그럴 때에도 넌 나에게 등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에 마치 셋이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어.
혹시 네가 그때까지 내 팔과 다리를 보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의심도 했어. 하지만 그럴 리가 없잖아.
때로 어떤 사람들은 우리 엄마에게 "자세히 보지 않으면 뇌성마비인 줄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을 해. 하지만 그런 말은 그냥 엄마를 위로하기 위한 거라는 걸 잘 알아. 내가 길거리를 다닐 때면 사람들은 안쪽으로 굽은 내 오른쪽 팔과 다리를, 절뚝이는 걸음걸이를 빤히 보거든.
아! 그리고 혹시 네가 자세히 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체육시간마다 반장이 손을 들고 얘기하잖아. "선생님, 강현이는 몸이 불편하니까 의자에 앉아 있으라고 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이야. 그러면 선생님은 호루라기를 불면서 손으로 벤치를 가리키거나 고개를 끄떡여. 그러면 난 말없이 벤치로 가서 앉아 있지.
그래도 나는 체육시간마다 운동장에 나가 줄을 서. 반장이 한 번 정도는 깜빡하고 선생님께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반장은 자기가 슈퍼맨이라도 되는 줄 아나봐. 내가 교실 청소를 하고 있을 때에도 어디선가 나타나서 내가 들고 있는 양동이나 대걸레 같은걸 가지고 가거든. 심지어는 주변에 있는 애들한테 이렇게 말해. "강현이는 몸이 불편하니까 우리가 도와주자. 이건 네가 들어." 그러면 그걸 들고 가는 애는 입이 하마처럼 툭 나오지.
넌 먼저 나서서 나를 도와주지 않았어. 그래서 네가 더 마음에 들었어. 그건 네가 나를 특별히 대하지 않는다는 거니까. 그리고 이걸 증명할 수 있는 또 한 가지가 있어. 우리만의 신호 말이야. 그건 평범한 아이들만 할 수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여태까지 난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 거였어.
먼저 신호를 보낸 건 너였어. 내가 수업시간에 창밖을 보고 있으니까 네가 내 팔을 살짝 꼬집었잖아. 나는 깜짝 놀라서 너를 쳐다봤지. 너는 곁눈질로 칠판을 보며 입모양으로 '칠판 봐'라고 말했어. 나는 팔을 꼬집혔다는 것도 까먹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어.
그 다음에는 네가 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고 종이에 낙서를 하고 있을 때 내가 네 팔을 꼬집었지. 네가 깜짝 놀라서 나를 쳐다봤을 때 나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입모양으로 '한 눈 팔지마!'라고 했어. 너도 그때 '큭큭'하고 웃었어.
우리는 수업시간에 서로 한눈을 파는지 아닌지 항상 감시했어. 그래야 한 번이라도 더 꼬집을 수 있으니까. 가끔 눈물이 찔끔 날만큼 아프기도 했지만 기꺼이 참을 수 있었어. 진짜 친구가 생겼다는 징표이기도 했으니까.
어떤 날은 서로 딴청을 부리는 척 하다가 꼬집으려는 순간 눈이 마주쳐서 책에 얼굴을 묻고 한참이나 웃었잖아. 난 내 허벅지를 꼬집으며 웃음을 참으려고 했지만 멈출 수가 없었어. 웃다가 눈물을 흘린 건 처음이었어. 이건 비밀이지만 하마터면 바지에 오줌을 쌀 뻔 했다니까. 그래도 선생님께 들키지 않은 게 참 다행이야.
나는 아침에 학교에 가는 일이 좋아졌어. 걸음걸이도 더 씩씩해졌지. 학교에 빨리 가려면 어깨를 쫙 펴고 보폭을 넓혀서 걸어야 하니까 말이야. 천천히 갈 때보다 몸이 더 기우뚱하긴 했지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어.
어느 날 엄마는 내 몸에 있는 멍 자국을 발견했어. 나는 멍이 든 줄도 몰랐거든. 별거 아니라고 말했는데 엄마는 팔에도 다리에도 특히나 아픈 쪽에 멍이 있다면서 누가 괴롭히느냐고 자꾸만 묻는 거야. 나는 아무에게도 맞지 않았고 아프지도 않으니 걱정 말라고 했어.
그런데도 엄마는 화를 내기도 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되어 내 눈을 찬찬히 보면서 되묻곤 했어. 그래도 나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어.
난 그걸로 끝이 난 줄 알았어. 엄마가 학교로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어.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말이야.
"우리 반에 몸이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나쁜 아이가 있나요? 강현이 어머니가 학교에 오셨어요. 강현이를 괴롭히는 아이가 있는 것 같다던데 혹시 우리 반 인가요?"
교실 안은 침 넘어가는 소리도 들릴 만큼 조용해졌어. 나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어. 손을 들고 나는 몸이 약한 아이도 아니고, 괴롭힘을 당하지도 않았다고 말하고 싶었어. 그리고 해주 넌 절대 나쁜 아이가 아니라고 말하려고 했어. 하지만 목구멍에서 자꾸 뜨거운 것이 올라오면서 내 말을 가로막았어.
그때 내 뒤에 앉아 있던 반장이 손을 들고 말했어.
"해주가 강현이를 꼬집는 걸 봤어요."
나는 깜짝 놀라서 소리쳤어.
"아니에요. 해주가 그러지 않았어요."
선생님과 아이들은 모두 너와 나를 쳐다봤고, 교실 안은 또 다시 조용해졌어. 선생님은 너에게 청소가 끝난 후 교실에 남아서 기다리라고 하셨어. 나는 차마 너를 쳐다볼 수가 없었어. 너도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나는 청소가 끝난 후에도 계속 운동장에 앉아 있었어. 집에 갈 수도, 그렇다고 교실로 갈 용기도 나지 않았어.
결국 집으로 와서 엄마를 보자마자 소리쳤어.
"날 좀 그냥 내버려 둬요. 내가 안 아프다는데 왜 학교까지 왔어요?"
엄마는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내려다 봤어.
"친구가 생기면 장난도 칠 수 있고, 멍도 들 수 있잖아요. 나한테도 처음으로 친구가 생겼단 말이야…."
나는 눈물이 나와서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방으로 들어갔어. 엄마가 방문을 두드렸지만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어. 엄마는 기어이 열쇠로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왔어.
"친구랑 장난을 치다 그랬다고? 미리 말을 하지. 엄마는 걱정이 돼서 찾아갔던 거야."
나는 침대에 엎드려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어.
"그런데 그 친구가 누구야? 장난기가 심한 친구니? 아무리 그래도 멍이 들 정도로 장난을 치면 어떡해?"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까 엄마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어.
"엄마가 내일 선생님께 가서 다시 말씀드릴게."
나는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어.
"안돼, 학교에 오지 마세요. 내가 알아서 할게요."
엄마는 못마땅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다 방에서 나갔어.
나는 널 볼 자신이 없어서 학교에 가는 게 겁이 났어. 그래도 어떻게든 오해는 풀어야겠다고 마음먹었어.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널 찾았는데, 네 가방도 네 모습도 보이지 않았어.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네가 올 때까지 어떻게 말해야 할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거니까.
그런데 말이야. 넌 학교에 오지 않았어. 선생님은 네가 감기에 걸려서 결석을 했다고 했어. 그 얘기를 듣자마자 내 심장이 빠르게 뛰었어. 혹시 네가 나 때문에 아픈 거라면, 아니 아프지도 않은데 일부러 학교에 오지 않은 거라면….
나는 가만히 있어도 손끝이 자꾸만 떨렸어. 머릿속에는 오로지 네 생각밖에 나지 않았어. 그리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처음부터 곰곰이 생각해 봤어.
수업이 끝난 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교무실로 갔어. 선생님 앞에 서자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어. 그래도 나는 용기를 내서 말했어.
"엄마가 오해를 해서 학교까지 오셨어요. 해주랑 장난치다 멍이 든 건데, 엄마가 잘 모르고…."
"그래, 장난으로 그런 거라는 말은 해주도 하더라만…. 사실이니?"
"네, 사실이에요. 저도 해주를 꼬집었어요."
"너도?"
"네. 해주도 멍이 들었을 거예요."
"그래? 해주는 너도 꼬집었다는 말은 하지 않던데?"
나는 눈물이 나려고 했어.
"정말이에요. 서로 장난친 거예요."
선생님은 골똘한 표정을 지었어.
"미리 말하지 못해서 죄송해요. 그리고 해주네 집이 어딘지 알고 싶어요."
"가보려고?"
선생님은 고개를 갸웃하며 웃었어. 그리고 너희 집 주소를 가르쳐줬어.
주소만으로 집을 찾아가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더라. 하지만 난 너희 집이 어느 쪽인지 대충 알고 있었어. 네가 집으로 가는 길을 몰래 따라가 본적이 있거든. 결국 널 놓치고 말았지만….
나는 네가 사라져버린 그 골목부터 아띠빌라를 찾기 시작했어. 빌라 이름을 보기 위해 계속 고개를 들고 다녀서 목이 아플 지경이었어.
그렇게 얼마를 헤맸을까? 드디어 네가 살고 있는 집을 찾아냈어. 아띠빌라 B03호. 나는 떨리는 손으로 초인종을 눌렀지. 집 안에서는 네가 아닌 할머니가 나오셨어. 넌 병원에 가고 없다고 했지만 다행히 많이 아프지는 않다고 하셨어.
나는 그냥 오려다가 닫히려는 문 틈으로 손을 넣어 다시 열고 할머니께 용기 내어 말했어.
"해주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전해주세요."
말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았어. 그런데 우리 집이 가까워질수록 네가 그 말을 전해 듣고 날 용서해 줄지 불안해졌어. 어떻게 하면 네가 오해를 풀 수 있을까 고민을 했어.
한참 후에야 좋은 생각이 떠올랐지 뭐야.
월요일 날 학교에 가면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려고 해. 편지지가 아닌 칠판에 말이야. 그럼 네가 읽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고민을 해결할 수 있어. 반 아이들도 우리가 다른 짝꿍들처럼 장난을 했다는 걸 믿게 될 거야.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다 쓸 생각은 없어. 우리 둘만의 비밀은 우리만 간직하면 되니까.
너에게 편지를 다 쓰고 난 다음에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쓸 거야. 나는 더 이상 체육시간에 벤치에 앉아있기 싫다고, 발야구도 하고 싶고, 축구도 하고 싶다고. 반 아이들을 위해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청소도 할 수 있다고 말이야.
월요일 날에는 학교에 올 수 있지? 그때 웃는 얼굴로 만나자. (*)
◆ 당선소감
반기령(본명 반은숙) ▷ 1981년 서울 출생 ▷2004년 대전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어릴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습니다. 문학을 접하면서부터는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싶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스물아홉 살 끝자락에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정말 기쁩니다.
어른이 되어 동화를 쓴다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동화를 쓰면서 내 안의 자라지 못한 나와 만나는 순간을 경험하고 나니 동화를 만난 게 참 행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화를 쓰면서 내 안의 나를 다독이며 성장시키고, 어린이들에게 작은 위안을 주고 싶습니다.
열심히, 치열하게 그러나 즐겁고 행복하게 동화를 쓰겠습니다.
부족한 글을 애정을 가지고 봐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매일신문사 관계자들께 감사합니다. 갈팡질팡 하지 말고 계속해서 동화를 쓰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써서 보답하겠습니다.
글 쓰는 즐거움을 알게 해 주신 대전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님들과 동문들, 어려운 길을 즐겁게 발맞춰 갈 수 있게 해 준 동화빵 언니들과 한겨레아동문학 작가학교 선생님들, 정기영 선생님, 탁정언 선생님, 오랜 벗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항상 믿고 지켜봐 주시는 가족들, 특히 열심히 글 쓰라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엄마, 아빠, 첫 번째 독자이자 든든한 지원군인 남편과 딸 소원이에게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심사평=잔잔한 서정으로 끌고 간 수작
응모 작품들을 읽으면서 줄곧 동화를 쓰는 기본적인 자세에 대한 생각을 하였다. 이는 많은 장르 중에서 동화 창작을 선택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먼저 동심을 이해하고 동심으로 돌아가 진솔하게 마음을 털어놓고 써야 하는 게 동화일 것이다. 최근 들어서 동화를 쓰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원인도 이에 다름 아닐 것이다. 갈수록 삶이 힘들어지면서 사람들마다 자유로운 영혼과 그 순수함을 열망하기 때문이 아닐까.
예년에 비하여 훨씬 많은 양이 응모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그 수준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어느 작품 하나인들 그냥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긴 숙독 끝에 최종심에 오른 작품이 '제천가는 버스'(곽부강), '등나무와 쇠기둥'(김효진), '할아버지와 휴대폰'(최소희), '칠판에 쓰는 편지'(반기령)였다.
곽부 씨의 작품은 교육적인 소재로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소재를 선택하고 있으나 교훈이 너무 노출되어 있으며, 꿈으로 처리된 구성이 자연스럽지 못하였다. 김효진씨는 등나무와 쇠기둥이 서로 친해 가는 과정의 순수함에 호감이 가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소재나 구성에서 약간은 진부한 느낌이 들었다. 최소희씨의 '할아버지와 휴대폰'은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애틋한 정을 휴대폰이라는 매개를 통해 진하게 나타낸 감동적인 작품이었다. 그러나 어린이가 이해하기 쉽도록 선명하고 단순한 구성이었으면 더욱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당선작인 반기령씨의 '칠판에 쓰는 편지' 는 성장 과정에 있는 어린이들에게 친밀한 소재를 잔잔한 서정으로 끌고 간 점이 좋았다. 너무 평이한 구성이라는 흠도 있었지만 어린이들의 정감에 맞는 적당한 리듬과 문체, 묘사가 작가로서의 역량을 가늠하기에 충분했다.
- 김 일 광(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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