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향산 이만도 선생 자정순국 기린다

나라잃은 슬픔에 단식순결…항일독립운동 기폭제 역할

"을미년 국모 시해 사건에 한 차례 죽지 못했고, 을사늑약 때 두 번째로 죽지 못했다. 산으로 들어가 구차스럽게 생명을 연장했던 것은 오히려 기다림이 있어서였다. 이제는 희망이 끊어졌다. 죽지 않고서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로 나라 잃은 설움과 울분을 참지못해 음식을 끊고 단식에 들어간 지 24일 만인 1910년 10월 10일 순국한 향산 이만도 선생은 자신의 죽음의 24일을 기록한 '청구일기'(靑丘日記)에서 죽음을 택해야 했던 처절함을 이렇게 적었다.

향산 선생은 1854년 태어나 1882년 통정대부 승정원동부승지를 지냈으며 1895년 단발령에 항거, 창의했고 1910년 한일합방 소식을 듣고 조상의 묘소에서 통곡하며 24일간 일체의 음식을 먹지 않고 지내다가 69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안동시는 국치 100년(國恥百年)을 맞아 항일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됐던 '향산 이만도 선생 자정순국'에 대한 추모행사를 다양하게 마련한다.

향산 선생이 "나라에 보탬이 되지 않는 '소용'(所用)없는 목숨을 유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선택한 단식 순결은 안동 독립운동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항일 독립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이 사건은 김대락과 이상용, 김동삼 선생이 눈 내리는 엄동설한에 남부여대(男負女戴)의 행렬을 이끌고 만주벌판으로 떠나게 된 계기를 만들었다.

안동시는 이 같은 향산 선생의 자정순국 100주년 추모사업을 위해 선생의 사상과 저항정신을 조명하는 기념식, 학술대회, 선양사업 등 추모행사를 마련해 안동의 항일투쟁사를 재조명하고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성지로서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

안동독립운동기념관 김희곤 관장은 "항일투쟁기 가장 극적인 투쟁은 자정순국이었으며, 일제 통치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가장 극렬한 저항이 곧 목숨을 끊는 항쟁이었다"며 "1905년 이후 1910년대까지 전국에서 자결한 순국자가 70명에 이르렀고 이 가운데 안동출신이 10명이다"고 했다.

안동시 관계자는 "올해 향산 이만도 선생 자정순국 100주년 추모행사를 통해 역사적 의미를 재정립하고 순국자들의 호국·구국정신을 계승하는 사업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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