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생아신(父生我身) 모국오신(母鞠吾身).'(아버지 내 몸을 낳으시고 어머니 내 몸을 기르셨다.)
지난달 28일 오후 3시 연말연시를 맞아 곳곳이 축제분위기로 흥청거리는 가운데 빽빽이 들어선 빌딩숲 사이로 한문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퍼지고 있었다. 소리를 따라 들어간 곳은 대구 수성구 범물동 동아백화점 맞은편의 한 서실. 서예가 김윤식(54)씨가 운영하고 있는 무민재였다. 50여평 정도 되는 이곳에서는 30여명의 성인들이 김씨의 지도에 따라 '사자소학'(四字小學)을 익히고 있었다.
이곳에서 김씨는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무료 한자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대구의 대표적인 학원중심가인 이곳에서 서실을 운영해오던 김씨는 6년 전 학원수업을 마친 남녀 학생들이 대로변에서 버젓이 팔짱을 끼고 뽀뽀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평소 신문지상을 통해 각종 패륜 범죄를 접하고 예절·인성 교육의 필요성을 느껴왔던 김씨는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김씨는 "오늘날 청소년 범죄가 갈수록 늘고 흉포화되고 있는 것은 성적·입시 위주의 교육탓에 청소년들이 예절·인성교육을 제대로 받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며 "올바른 정신과 인간의 도리를 가르치는 한학교육으로 청소년들에게 조상들의 지혜와 예법을 가르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적인 고민이 따랐다.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학원으로 달려가야 하는 청소년이 입시교육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한문교육을 받으려 할 리 만무했기 때문이었다. 김씨는 차선책으로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한문교육을 하기로 했다. '부모가 바로 서야 자녀들이 바로 선다'는 생각도 한몫했다.
교육과정은 주로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며 인간의 본분과 도덕성을 지키는 유교적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데 김씨가 특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효(孝).
"핵가족이 보편화되면서 집안에 가정교육을 담당할 '어른'이 없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세상에는 지켜야 할 기본적인 도리가 있는데도 부모들이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식으로 아이들을 응석받이로 키우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물질보다는 '지식'과 '사랑'을 전해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고, 효를 중심으로 제대로 된 인성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부모들에게 가르치고 싶었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수업은 철저히 파자교육으로 이뤄진다. 한자의 뿌리와 제자 원리 등을 통해 평생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한문을 쉽게 가르치기 위해서다. 김씨는 "한자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들이 많은데 표의문자인 한자의 특성상 원리만 알면 의외로 쉽게 배울수 있고 그 과정에서 옛 현인들의 삶의 지혜와 도리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부모 친'(親)이라는 한자는 '집나간 자식이 무사히 돌아올까 나무(木)위에 서서(立) 항상 지켜본다(見)'는 의미가 합쳐저서 만들어진 글자다. 원리만 알면 누구나 손쉽게 배울 수 있고 글자를 통해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까지 가르칠 수 있다는 것.
김씨는 많은 사람이 자신의 뜻을 이해해주고 동참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 올해부터 한문무료수업을 주1회에서 4회로 대폭 늘릴 계획이다. 또 방학 때는 청소년반을 별도로 운영하고 갈수록 늘어나는 다문화 가족 자녀들을 위한 반도 구성할 계획이다.
올해로 붓을 든지 30년째인 김씨는 매일서예대전 대상, 대한민국서예대전(국전)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매일서예대전 동우회 3대 회장을 지냈으며 2003년 국전 심사위원 등으로 참여하는 등 대구를 대표하는 서예가로 활동하고 있다. 053)783-3388.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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