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개봉한 '용서는 없다'는 딸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인 부검의와 그의 딸을 납치한 토막살해범의 대결을 그린 스릴러이다.
금강 하구 갈대숲에서 아름다운 여인의 시체가 발견된다. 한쪽 팔이 사라진, 여섯 조각의 토막 시체.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의이자 경찰대학 법의학 강의를 맡고 있는 강민호(설경구) 교수가 부검에 나선다. 부검 결과와 함께 선배 형사로부터 '민짭'(짭새)이라며 구박받지만 뛰어난 행동력을 보여주는 여형사 민서영(한혜진)의 추리로 용의자는 이성호(류승범)로 압축된다.
이성호는 환경운동가로 건실한 청년이다. 형사들에 의해 순순히 경찰서로 끌려온 이성호는 새만금 간척사업을 반대하기 위한 퍼포먼스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진술한다. 이로써 사건은 쉽게 해결되는 듯했다. 살해도구가 발견되고, 범행 동기와 함께 범인의 진술, 영장만 청구되면 희대의 토막 살인은 종결될 상황이다.
그러나 일은 취조실에서 터진다. 이성호는 강 교수에게 "딸을 살리고 싶으면 증거를 조작해, 3일 안에 내가 나가도록 하라"고 주문한다. 딸을 납치했다며 절박한 목소리까지 들려준다. 강 교수는 사랑하는 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일도 접으려던 참이다. 딸의 끔찍한 토막 시체를 부검까지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시체에 남겨진 단서를 다시 파헤치는 부검의와 연쇄 살인을 예고하는 비밀을 간직한 살인마의 피할 수 없는 대결이 시작된다.
스릴러의 생명은 긴장감이다. '용서는 없다'는 스토리의 설정이나 캐릭터의 대결 구도가 일단 흥미진진하다. 딸을 구하기 위해 증거까지 조작해야 하는 부검의, 이를 파헤치는 여형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조종하는 피의자, 거기에 서서히 드러나는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과거의 끔찍한 기억까지 횡과 종으로 얽혀 그럴듯하게 얽어낸다. 쫓고 쫓기는 자의 역할이 바뀌어 범인이 정한 시한 내에 증거를 조작해야 하는 법의학자의 고군분투가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이야기가 너무나 익숙하다는 것이다. 설정만 보면 딸을 구하기 위해 범인과 거래할 수밖에 없었던 변호사 엄마를 그린 '세븐 데이즈'가 오버랩될 것이다. 이 외에도 '시크릿' '그놈 목소리' '올드보이'에 데이빗 핀처의 수작 스릴러 '세븐'까지, 이 영화는 많은 스릴러의 선행학습을 끌어온다. 그래서 앞선 데자뷰는 늘 이 영화의 긴장의 고비마다 고삐를 놓고 만다.
'용서는 없다'는 도저히 과거를 용서하고는 살아갈 수 없는 한 사내의 복수극이다. '멈출 수 있다면 그것은 복수가 아니다'는 광고 카피가 적절해 보인다. 그래서 악연을 가진 두 명의 대결 구도가 생명이다.
설경구와 류승범의 연기력에 크게 기대고 있다. 설경구는 초조하면서도 분노에 가득한 눈빛과 처절한 표정으로 자식을 찾아 동분서주하고, "살해 도구 감추는 건 박사님 일이잖아요?" "박사님, 할 일도 많은데 계속 제자리걸음이네" 등 류승범은 절박한 순간에 능청스러움을 내뱉는다.
그러나 둘이 보여주는 캐릭터는 지극히 평면적이다. 한순간 빛을 내지만 캐릭터에 일관적으로 녹아들지는 않는다. 설경구의 장황스런(?) 연기는 도를 넘고, 신출내기 민 형사(한혜진)와 고참 형사(성지루)의 관계 또한 판에 박힌 듯하고, 아둔하고 코믹한 역할을 주로 했던 류승범이 범인의 교활함과 슬픔을 함께 잡아내는 것도 역부족이다.
지난 악연들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막판으로 치닫던 극은 반전을 숨겨두고 있다. 영화 초반 너무나 끔찍했던 부검 장면에 대한 복선이다. 이 영화의 최대 볼거리다.
세상의 가장 완벽한 용서는 복수에서 나온다고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탈리오의 법칙은 원시적이지만 어떻게 보면 가장 공정하고 정당한 대응일 수 있다. 숱한 스릴러들이 복수에 목을 매는 것은 그만큼 처연하면서도 냉혹하고, 또한 극적이기 때문이다.
'용서는 없다'는 극적인 복수극을 꿈꾸지만, 그것은 마치 지난연말에 달갑지 않게 만난 친구와의 판에 박힌 인사말처럼 반복적이고, 공허해 보인다.
'용서는 없다'의 김형준 감독은 방송사 PD 출신으로 영화 '그놈은 멋있었다' '공필두' 등을 각색·기획했으며 이 영화로 감독 데뷔했다. 상영 시간 125분. 18세 관람가.
김중기 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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