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이민자 중에는 홀아비가 절대적으로 많았다. 농장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되자 이들은 사진으로 아내를 구하고자 나섰다. 이 사진 묶음을 쥔 중매쟁이는 딸이 있는 집을 찾아 다녔다. 엉뚱한 사람의 사진을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호놀룰루에 도착한 어느 신부는 마중 나온 늙은이가 시아버지인 줄 알고 따라 갔다. 며칠이 지나도 시아버지만 있어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그 늙은이가 방으로 들어와 자신이 남편이라고 했다. 결사적으로 저항하고 밤새워 울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연을 맺고 살기도 했다.
1912년 10월 결혼 당시, 권도인은 만 24세, 이희경은 만 18세였다. 이들 부부를 추적하는 일은 오랜 숙제였다. 이희경이 졸업했다는 여자기독교학교, 곧 대구신명여고에는 동창회 명부만 있다. 그런데 1회 명부에 이희경은 없다. 신명여고와 나뉘어 나간 신명여중에 학적부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일이 비로소 풀리기 시작했다. 학적부를 보니 1회 졸업생 가운데 1번이 이희경이다. 주소와 아버지 이름, 게다가 호놀룰루로 시집갔다고도 적혀 있다. 살던 집은 남산동, 신명여고 근처였다. 대구 중구청 담당자의 도움으로 원적을 추적하니, 본명이 이금례였다.
이금례라면 신명여고 동창회명부에 있다. 1회 졸업생 3명 가운데 1번 이금례, 이것이 본명이다. 하와이에서 이희경으로 고쳤다. 학적부는 1919년 이희경이 잠시 귀국했을 때 새로 만든 것이다. 그녀는 하와이에 가면 공부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욕심에 본래 혼담 대상이던 언니를 제치고 그곳으로 갔다. 어찌 생각하면 자신보다 못할 수도 있는 어느 남자에게 말이다.
또 하나 수확은 원적에서 남편의 본적을 알게 된 일이다. 친정 호적에서 삭제된 사유로 혼인 사실과 시댁 본적이 적혀 있었다. 그곳이 군위군 소보면 위성동이다. 다시 소보면사무소으로 달려가 옛 호적을 보니, 권도인 가족은 영양군 석보면 북계에서 옮겨 왔다고 적혀 있다. 그가 하와이로 간 뒤의 일이다. 어느 독립운동가 부부의 뿌리 찾기는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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