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옛 시조 들여다보기] 한권 대학책이

고응척

한 권 대학책(大學冊)이 어찌하여 좋은 글고

나 살고 남 사니 그 아니 좋은 글가

나 속고 남 속일 글이야 읽어 무엇하료

"한 권의 대학이라는 책이 어떻게 하여 좋은 글인가/ 내가 살고 남이 살 수 있도록 쓰여 있으니 그것이 어찌 좋은 일이 글이 아니겠는가/ 내가 속고 남도 속일 글이야 읽어서 무엇에 쓰겠느냐" 로 풀리는 시조다.

고응척(高應陟·1531~1606)의 작품이다. 명종·선조 대의 문신이요 학자다. 호는 두곡(杜谷). 19세에 사마시에 합격했고, 31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이듬해 함흥교수가 되었다. 다음해 사직하여 고향에 돌아와 학문에 전념 『대학』의 내용을 여러 편을 시조로 옮겼다. 40세에 회덕현감, 45세에 강원도사, 52세에 예안현감, 75살에 경주 제독관에 임명되었으나 그해 운명했다.

독서 권유 시조라고 할 수 있겠다. 이른바 『대학』이라는 책이 참 좋은 책이라는 것이다. 『대학』이 어떤 책인가? 유교 경전인 사서(논어, 맹자, 중용, 대학)의 하나다. 공자의 유서라는 설과 자사 또는 증자의 저서라는 설이 있다. 본디 『예기』의 한 편(編)이었던 것을 송(宋)의 사마광이 처음으로 따로 떼어서 '대학광의'(大學廣義)를 만들고, 그 후 주자의 교정으로 현재의 형태로 되었다. 명명덕(明明德), 지지선(止至善), 신민(新民)의 세 강령을 세우고 그에 이르는 여덟 조목의 수양 순서를 들어서 해설하였다.

유교가 시대적 가치였던 때에 유교 경전 중의 하나이니 책의 가치야 더 거론할 것도 없었겠지만 그 책을 읽히려는 의도를 가진 작품이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에 읽어야 할 책들이 있다. 읽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려운 책들도 있게 마련인 것이다. 유교 시대에 유교 경전을 읽지 않고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책을 읽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면 세상은 참 거칠어질 것이다. 거리마다 골목마다 노래방 불빛은 찬란하지만, 동네 서점은 찾기가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애창곡은 있어도 애독서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사실을 조금만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그 사회의 미래는 밝아질 것이다. 언제나 곁에 두고 읽고 싶은 책, 읽고 읽어도 좋은 책 한 권 갖고 있다면 개인의 삶이 달라지고 세상이 달라지지 않겠는가.

문무학 시조시인·경일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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