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근대미술 산책] 산수

한아한 풍경의 觀暴圖…고담한 세계로 상상력 이끌어

작가 : 석강 곽석규(石岡 郭錫圭 1858~?)

제작연도 : 연대미상

재료 : 지본수묵(紙本水墨)

크기 : 137 × 32㎝

소장: 대구화랑 김항회

석강 곽석규는 20세기 초반 무렵까지 영남지역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서화 작가이다. 특히 이 그림은 조선말기 신감각의 이색화풍을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어 아주 괄목할 만하다. 멀리서 보면 여백이 많은데다 그의 다른 그림들과는 달리 농묵을 거의 쓰지 않아서 설경으로 착각도 든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 작은 점경으로 묘사된 두 인물이 있는데 그들은 앞에 있는 폭포를 바라보며 청담을 즐기고 있어 때는 추운 겨울이 아닌 늦가을쯤이겠다. 화제의 시에도 가을 풀의 시들어 감을 늙음에 비유해 탄식하는 대목이 있다.

그림을 좀 더 자세히 보면, 근경 물가 계곡 위에 잎이 다 진 나무 두 그루와 그 사이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소나무 한 그루가 화면 중앙에 있고 그 아래서 세속과 멀리 떨어져 자연에 귀의한 은자들인 양 담소하며 마주앉은 두 사람이 왼편 작은 폭포를 올려다본다. 이런 장면은 김수철의 '송계한담도'나 윤두서의 '송하관폭도' 등에서처럼 옛 화가들이 문인화풍의 그림에서 즐겨 다뤄온 소재다. 산 위로는 커다란 바위언덕이 솟아있고 그 아래 누각 대신 백옥(가난한 사람의 초가집) 한 채가 보일 뿐, 전체적으로 묘사가 소략해서 한층 삽상(颯爽)한 기운이 돌게 한다. 예리한 필선과 엷은 담묵으로 그려나가다가 군데군데 짙은 먹점을 찍어 액센트를 주고 있다.

화면 한쪽을 넓게 비워두는 이런 구도는 남송 마하파의 형식인데 무한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고 근경 일부를 더욱 주목하게 하는 특징이 있다. 간결한 묘사로 서정적이면서도 사의적인 분위기를 잘 살렸다. 서양화의 감각적이고 즉물적인 표현에 비하면 이런 작품이 주는 인상은 담담하고 그윽하기 그지없다고 해야 할지. 우리의 상상력을 고담한 세계로 이끌며 정신을 고양시킨다. 그렇다고 결코 관념적이지만 않은 것이 종이와 먹의 접촉이나 붓을 움직일 때의 절제된 신체의 동작이 생생한 감각과 힘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기교라기보다 교양과 인격에서 나온다고 느껴지는 점이 전통서화의 큰 매력이다.

이 그림을 그린 석강은 어떤 분일까. 이당 김은호의 『서화백년』에는 청하(淸霞)에 살면서 산수를 잘 그렸다는 짧은 한 줄이 나온다. 영일에서 출생하여 중국 서화를 많이 수집하였고 석재 서병오와 교우하였으며 합작한 그림도 꽤 전한다고 한다. 근래 홍두선씨란 분이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한 유물가운데 상주 출생인 장지연 부친의 회갑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12폭 병풍이 있는데, 서울의 심전 안중식, 관재 이도영과 영남의 석재 그리고 석강의 그림이 들어있다 한다. 이런 단서들을 통하여 그의 활약 범위를 짐작할 뿐이다. 다음은 그림 상단의 화제를 풀이한 것인데, 작가의 몰년도 확인되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의 노년작일 것 같다.

憐君一見一悲歌 가련쿠나 그대여 한 번 보고 슬피 노래하니

歲歲無如老去何 해마다 늙어 감을 어이할 길 없네.

白屋漸看秋草沒 가난한 집에 점차 가을 풀 시드니

靑雲莫道故人多 청운의 길에 벗이 많다 말하지 말게. (김홍영 역)

김영동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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