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창석의 뉴스 갈라보기] 날아라, 도서관

올해 대구에서 5개의 공공도서관이 새롭게 문을 연다는 기사가 눈에 번쩍 띈다. 나로서는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없다. 개관 예정인 도서관은 4개의 일반도서관과 1개의 어린이도서관으로 범어동 율하동 이현동 등에 위치한단다. 대구에는 이미 20개의 도서관이 있는데 이로써 25개로 늘어난다.

대구는 예전부터 타 시에 비해 도서관의 규모나 시설이 좋은 편이었다. 내가 서울에 살 때 안국역 근처에 있는 정독도서관을 줄곧 이용했는데 장서량도 그렇지만 한여름에 에어컨조차 틀지 않아 땀을 뻘뻘 흘리며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무렵에 대구에서 가본 효목도서관은 정독도서관에 비하면 호텔 같았다.

올해 5개의 도서관이 더 개관하면 대구는 훨씬 더 진전된 문화적인 기반을 갖추는 셈이다.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해 놓고 보니, 개관할 그 도서관들이 과연 어느 정도의 장서량과 운영체제를 구비하고 시민의 문화 접근성을 높일지 궁금해진다.

예전에 도서관은 학생들이 시험공부를 하거나 시민들이 책을 대출하는 장소에 불과했지만 현대의 도서관은 책뿐만 아니라 오디오나 영화 CD, 시민의 교양교육, 전시 등을 대여하고 수행하는 복합적 문화공간이다. 현재 있는 시립중앙도서관을 비롯한 곳곳의 공공도서관도 이러한 문화적인 다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도서관은 여기서 몇 발짝 더 앞으로 나가야 한다. 시민들이 다양한 문화를 능동적으로 더 가깝게 향유할 수 있도록 도서관의 구조와 운영체제에 혁신을 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대형 열람실을 대폭 줄이면서 개방형 자료실을 확대하고 소규모의 공간을 늘려서 시민들의 기호에 세심하게 반응해야 한다. 또한 홍보물을 발행하여 아직 멋진 도서관이 있다는 소문을 듣지 못한 시민들에게 알려 활용성을 높여 나가면 좋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미국의 공공도서관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모델의 전부는 아니라는 점이다. 규모와 예산 면에서 따라갈 수도 없을뿐더러 역사도 다르다. 우리는 우리 지역의 문화적 특성과 더불어 현대의 문화 흐름에 맞는 도서관 운영 방식을 따로 개발해야 한다고 본다.

도서관의 개선을 위해서는 먼저 도서관 운영자의 지식과 마인드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수년 전에 나는 한 공공도서관 관장을 만나 얘기를 나누다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자신은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관장 업무를 하는 것과 독서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의아하게 쳐다보는 나에게 되물었다. 책을 왜 읽는지도 모르고, 책의 위대성을 느끼지 못하는 그를 보면서, 단순히 행정 차원으로 도서관장직을 임명하는 공직사회의 문화적 감각에 절망했다.

도서관은 오늘날 도시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화 기지(基地)이다. 어린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꿈을 키우며 오랜 지적 유산 앞에 감격하며, 지식을 습득하고 서로 소통을 하면서 더 나은 정신과 감각을 일깨우는 장소이다.

물론 문화는 어떤 공공의 제도에 의해 성장이 이루어지는 대상은 아니다. 오히려 공적인 제도에 의한 뒷받침은 문화의 힘을 허약하게 만들고 자생력을 떨어뜨리는 역기능을 초래하기도 한다. 가령 수준 높은 시나 그림은 거의 개인과 민간에 의해 자율적으로 발휘되는 속성을 가진다. 그러나 개인과 민간은 그것을 소통시키는 장소를 마련하지 못한다. 앞서 공공도서관이 문화의 핵심 기지라고 한 말은, 도서관이 문화가 창출되는 곳이라기보다 그것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일종의 놀이터로서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가벼운 취미거리에서부터 책읽기와 토론, 나아가 영화, 음악, 미술, 자연과학 등 각종 전문적인 분야의 모임까지 이곳을 놀이터처럼 활발하게 사용한다면, 도서관이 바로 문화 기지가 되는 것이다. 그런 장소로는 도서관이 가장 안성맞춤이다.

이제 공공도서관은 문화엔터테인먼트의 공간이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뛰고 놀며 문화를 누리는 신명나는 공간이다. 동네마다 아름다운 작은 도서관이 들어선다면 아이들은 친구처럼 문화와 어울리고 더한 꿈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면 어느 날 도서관에서 나오는 한 떼의 아이들이, '날아라, 슈퍼보드' 대신에 '날아라, 도서관'이라고 노래할 것만 같다.

소설가 엄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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