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원태의 시와 함께]구름 한 채(이태수)

구름 한 채 허공에 떠 있다

떠 있는 게 아니라 거기 단단히 붙들려 있다

한참 올려다봐도 그 자리에 그대로다

풀 것 다 풀어놓고 클 태(太)자로 드러누워

꿈속에 든 건지, 미동조차 없다

아무리 끌어당겨도 아득한

내 마음의 다락방이 유독 큰 저 집,

눈을 감았다 떠보면

새들이 불현듯 까마득하게 날아올라

허공을 뚫고 있다

구름을 날카로운 부리로 마구 쪼아댄다

그분은 이 한낮에도 캄캄한 마음

다듬이로 두드려 구김살 펴주고

주름들을 다림질해준다

나도 모르는 허물들마저 하나씩 지우면서

그중 유별나게 깊이 파인 영혼의 골을 메운다

궁륭 같은 골에 날개를 달아준다

하지만 내가 여전히 움직이지 못하는 사이

구름 한 채 무참하게 이지러진다

며칠째 두문불출, 내가 구들장을 지고 있는

우리 집, 창 앞까지 낯익은 새들이 날아든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새들은 저희끼리 목청을 가다듬고 있다.

평론가 유성호는 이태수 시인의 시를 '상승과 하강 변증법'이라 규정하면서, "상처와 우울을 넘어 멀리 비상하면서, 동시에 지상으로 내려와 상처와 우울을 견디고 치유한다"고 했다. '구름 한 채'는 그의 시학이 잘 드러나는 시편이다.

구름은 하늘 높이 떠 있는 한 채의 집. "클 태(太)자로 드러누워"(시인의 분신?) 있는 구름은 이를테면 '꿈속에 든 것'이거나 '아득한 마음의 다락방' 같은 초월적 존재. 시인은 상승을 지향한다. "불현듯 까마득하게 날아올라/ 허공을 뚫고 있"거나, "구름을 날카로운 부리로 마구 쪼아댄다"는 건 가령 '화살기도'의 이미저리이다. '그분'은 "한낮에도 캄캄한" 마음의 구김살을 펴주고 허물들마저 지워주며, 깊이 팬 영혼의 골을 메워준다. 구름 한 채는 다만 "무참히 이지러짐"으로써 시인의 집 창 앞까지 "낯익은 새들"로 하강한다. 그리하여 며칠째 두문불출, 구들장을 지고 있는 시인의 상처와 우울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위무 받고 견딜 만해지는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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