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젠 멘탈이다]이타심

2주 전 아이티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인한 그 나라 국민들의 재난에 온 지구인들이 정신적인 위로와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구 저편에 살면서 우리와는 일면식이 없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방인들의 참상에도 냉정해지지 못하는 인간이 자기 주변의 불행을 나 몰라라 하지 않을 것은 당연해 보인다. 자신을 사랑하는 행동이 본인에게 이득을 가져다 주리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남을 위하는 행동은 우선 보기에 돕는 사람에게는 희생과 손해를 요구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이타심을 이기심보다 더 큰 덕목으로 여기는 것이다.

목욕탕에 가면 자기 등의 때를 벗기기가 쉽지 않아 같은 처지의 사람이 없는지 주변을 힐끔거리는 사람을 보게 된다. 어느 날 회진에서 전공의들과 임상심리사들에게 물어보았다. 때를 좀 밀어달라는 다른 사람의 부탁을 받았을 때, 이미 내 등의 때를 다 씻었을 때와 아직 그렇지 않을 때의 기분이 어떻더냐고? 도와주면 나도 보답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되는 때의 기분이 훨씬 더 낫더라는 것이 이구동성의 대답이었다. 인간의 순수한 선행에 토를 달지 말라는 주장들이 있을 법하지만, 이타적인 행동은 이와 같이 이기적인 동기가 함께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언뜻 보기에 베푸는 자에게는 득 될 것이 없어 보이는 이타적인 행동이 자연계에 어떻게 생겨났으며 또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어 왔을까?

어떤 동물의 세계에서 오로지 자기만 위하는 동물, 반대로 자기는 제쳐 두고 이웃 동물만 위하는 동물, 그리고 내 형편이 허락할 때에 남을 도와주는 동물의 집단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세 집단 중 어느 것의 생존 가능성이 가장 높을까? 첫째 집단에 속한 것들은 자기가 어려울 때 남의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이고, 둘째 집단은 형편에 관계없이 굶어죽거나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것이다. 이들 두 집단과는 달리 셋째 집단은 남이 어려울 때 내가 돕고 내가 어려울 때 남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에 생존하기에 가장 적합할 것이다. 자연은 당연히 셋째를 선택한다. 이를 호혜적 이타주의라고 하는데, 완벽한 설명은 아니지만 흡혈 박쥐가 흔히 인용된다. 이 박쥐는 연속 이틀간 피를 빨지 못하면 죽게 되는데, 그럴 때에는 동료들이 피를 나누어주어 함께 공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타심의 정도는 수혜자와의 유전적인 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같은 재난을 당하더라도 남보다는 친척일 때 이타심의 발로가 더 크고, 친척의 중상보다는 내 자식의 생채기가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이래서 피는 물보다 진한가 보다.

박종한 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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