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병이 유전(遺傳)이냐?"라는 질문을 환자들로부터 종종 듣는다. 그것도 원인 중의 일부라고 대답하면 어떤 분은 "다 팔자소관(八字所關)이네"라고 한다.
팔자(八字)라는 말은 운명과 같은 뜻이다. 옛날 사람들은 병에 걸리는 것이 귀신으로부터 저주를 받았거나, 재수가 없어서라고 철석같이 믿어왔다. 그랬던 것이 150년 전의 몇 가지 발견들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멘델이 유전법칙을 발견하고, 곧이어 생물의 유전 정보를 보관하는 DNA가 밝혀지면서 유전자가 운명까지 결정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도 많은 연구에 따르면 상당수의 질병은 태어나면서 이미 예정된 것이고, 유전자에 프로그램되어 있다는 증거를 들추어내고 있다. 그래서 어떤 회사들은 고객들에게 유전자 프로필을 아직은 꽤 비싼 값에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일부 사람들은 내 유전자가 이러니 질병도 예정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나 고민하기도 한다.
미리 결론부터 말한다면 '유전자가 반드시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비록 유전자는 타고난 것이라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에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유전자가 발현되는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좋은 유전자들, 즉 질병을 막는 유전자들은 활성화시키고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들은 억제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어떤 생활이 좋은 유전자를 부추겨 줄까?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고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다. 스트레스에 잘 대처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배부르지 않게 먹고, 무리 없이 적당히 운동하는 생활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뇌와 피부, 심장도 혈액과 산소의 공급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이것은 뇌 세포를 덜 죽게 하고, 심장을 튼튼하게 하며, 피부 주름을 줄여서 나이를 더 적게 먹은 것처럼 보이게도 한다. 뿐만 아니라 실험실에서 암세포를 배양한 결과 이런 변화를 준 집단의 70%에서 암세포의 배양이 억제되었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반면 만성 스트레스와 포화 지방·설탕·니코틴·알코올 과다 섭취 등은 나쁜 유전자의 발현을 돕는데, 이들 중 일부는 이미 우리 생활에 너무나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 적절히 대처하면 되겠지만 언제나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일수록 오히려 뒤로 미루는 우리의 고질적인 안전 불감증도 넘어야 할 산이다.
이쯤 되니 '팔자도 다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다시금 우리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준다. 유전자는 우리의 운명도 아니고 영원히 씌워진 굴레는 더욱 아니다. 일상생활의 변화로도 유전자의 방향을 바꿀 수 있으니 모두 우리가 하기 나름이다.
정호영 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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