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 시대 정치가 포청천은 대만에서 만든 드라마로 우리에게 명판관으로 익숙해졌다. 드라마 속 포청천은 죄를 지었으면 그가 누구든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보여줬다. 권력자의 압력과 회유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포청천의 소신에 찬 판결에 시청자들은 갈채를 보냈다. 죄가 드러나면 누가 뭐라 해도 '작두를 대령하라'고 한 그의 말은 통쾌함을 느끼게 했다. 소신만 뚜렷한 것도 아니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지혜로움도 매력을 끌기에 충분했다.
조선시대 어느 원님의 이야기다. 두 사람이 세 냥 돈을 서로 자기 것이라며 판단을 청해왔다. 서로 내 돈이라고 우기는 둘의 말만으로는 누가 맞는지 아리송했다. 고민 끝에 원님은 자기 돈 한 냥을 내어 두 사람에게 두 냥씩 나눠 가지게 했다. 두 사람도 한 냥씩 손해를 보고 나도 한 냥을 손해 봤으니 모두 한 냥씩의 손해로 끝을 내자는 게 원님의 판단이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할 판관의 소임으로는 마뜩잖지만 다툼의 불만을 최소화하려는 고육지책으로도 보인다.
판결의 생명은 당연히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데 있다. 다툼이 개인 간의 문제를 넘어선다면 사회질서에 합당하냐 여부를 판단해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옳고 그름이나 당부당을 판단하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판결에든 주장이 묵살된 쪽은 불만을 터뜨린다. 명판결의 대명사인 솔로몬의 재판에도 불만은 있을 수 있고 포청천의 판결에도 독불장군식이란 비난도 있었을 터다.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는 하늘만이 알고 대중의 마음은 늘 변화하기에 두부 가르듯 명쾌한 판결은 영원한 숙제인지도 모른다.
최근 정치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의 잇단 무죄 판결로 사법부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단독재판부가 도마 위에 올랐다. 단독판사의 나이와 성향, 사회적 경험을 놓고 제도 개선을 주장하기도 한다. 상식을 벗어난 판결이 사회질서를 흔들고 있다고도 한다.
단독판사들은 외롭다. 판결에 모든 책임을 혼자 져야 하기 때문이다. 선배 법관들은 단독판사 시절 기존 판례라도 의심하고 다양하게 고민하라고 권한다. 법관의 여정에서 가장 외롭고도 자유로운 시기에 법관의 소양을 키우라고 한다. 양면적인 다툼에 대한 판결의 결과도 양면적으로 나타난다. 삼심제의 이유이기도 하다. 정반합의 논리는 정과 부정의 가치를 같이 인정할 때 가능하지 않을까.
서영관 논설위원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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