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태흥의 책과 예술]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3

박종호 지음/시공사 펴냄/1만4천원

눈이 유난히 커서 마당 한 구석에 있던 뒷간에 가기를 무서워했던 아들에게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세상에 무서운 것은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란다." 어린 나이에 그 말씀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이제 머리카락이 희끗해지면서 약간은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세월은 귀신의 존재야 받아들이기 나름에 따라 그 이해관계가 달라지지만 사람의 문제는 자신과 타인의 관계에 따라 형성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결국 어머니의 그 말씀은 귀신을 믿지 말라는 것이거나 사람을 무서워하라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조심스러운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듯 살아가면서 깨닫거나 느껴야 하는 것들은 늘 어려워 보이지만 정작 무릎을 치고 나면 시간을 필요로 하는 쉬운 것이 되고 만다. 원망이나 후회라는 것도 그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시간은 가르치고 가르친다.

단숨에 읽히는 책은 좋은 책이다. 읽기가 편한 탓도 있지만 같은 생각을 공유한다는 느낌이 들 때 쉽사리 놓지 못하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3』은 서점에서 나와 책장을 다 덮을 때까지 그야말로 단번에 읽은 책이다. 저자인 박종호씨는 정신과 전문의로서 이미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전공자 못지않은 해박한 지식과 열정을 지닌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쓴 『유럽 음악축제 순례기』,『불멸의 오페라 1.2』,『박종호에게 오페라를 묻다』,『황홀한 여행』등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자신만의 편력을 정리한『내가 사랑한 클래식 1,2』와 더불어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의 필독서가 된 지 오래다. 특히 『내가 사랑한 클래식』시리즈는 고전음악 감상을 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된다. 많은 개론서나 입문서들이 생각과는 달리 어려운 전문 용어나 쉽지 않은 작품의 해설을 통해 오히려 클래식에 다가가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데 반해 박종호씨의 글은 초심자의 눈으로, 하지만 전공자 못지 않은 해박한 지식으로 쉽게 풀어 나간다. 때로는 작곡자의 삶과 연주자의 모습으로 또 때로는 감상자의 태도로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클래식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어느새 친숙한 것이 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늑대를 키우는 피아니스트' 프랑스의 엘렌 그리모(Helene Grimaud)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클라라 슈만(Clara Schumann)을 떠올린다는 저자의 글 속에서 평생을 스승의 아내였던 클라라를 사모했던 브람스(Brahms, Johannes)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지도 모른다. 또한 말러(Gustav Mahler) 의 10번 교향곡에 얽힌 이야기는 백발이 되어서야 비로소 남편 말러의 진실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던 미망인 알마(Alma Mahler)의 회환의 눈물을 담고 있다. "음악은 우리의 일상과 추억을 풍요롭게 해주는 벗이기도 합니다. 음악을 듣는 기쁨을 느끼며 음악을 사랑하게 될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 선생의 추천의 글은 클래식을 가까이 하는 길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님을 말해주는 듯하다. 이 겨울이 가기 전에 저자가 책의 말미에 추천하는 음반들을 통해 삶에 지친 우리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다면.

여행 작가·㈜미래티엔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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