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능력 인사'는 뻔한 거짓말

거짓말 아닌 거짓말로 여겨지는 것이 '능력 인사'다. 각종 기관'단체의 인사 발표에서 항상 뒤따르는 수식어는 "철저히 능력인사를 했다"는 것이다. 이는 인사권자인 기관'단체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구시와 경상북도, 시'군'구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새해 들어 간부 인사를 단행했다. 해당 단체들은 하나같이 "능력 위주의 인사를 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들 인사의 면면을 한번 들여다보자. 승진 또는 핵심 보직을 받은 사람 대부분이 소위 비서 출신의 가신그룹이거나 중앙부처나 국회의원, 집행부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의회, 언론기관 등에 줄 댄 흔적이 역력한 인사들이다.

A자치단체의 B씨. 그는 말년에 관운이 뚫린 대표적인 케이스로, 정년을 앞두고 부이사관 승진과 함께 부단체장을 역임하는 행운을 누렸으며 정년 후 남들이 부러워하는 경제단체의 임원 자리를 꿰찼다. 그의 능력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다.

A자치단체의 고위 간부가 된 C씨는 수년간에 걸쳐 외부 인사를 통해 단체장의 목을 죄었다. 정년이 다 된 그가 중앙정부와의 소통이 필요한 중요한 자리에서 뭘 할 것인지 의심스럽다는 얘기가 조직 내부에서조차 흘러나온다.

A자치단체의 D씨, E자치단체의 F씨는 단체장의 눈 밖에 나 고생하고 있다. D씨는 승진 인사에서 수차례 물먹은 후 겨우 승진했으나 단체장 가까이 가지 못하고 교육 파견을 갔다. 고시 출신으로 외국 연수를 다녀온 F씨는 승진 자리가 비어 있음에도 선택받지 못했다. 이들은 무슨 괘씸죄에 걸렸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한다.

G자치단체는 단체장이 여성을 간부로 발탁하는 등 학연과 지연을 배제한 능력 위주의 인사를 했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해당 조직과 지역에서는 단체장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만 골랐다고 지적한다. 그는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음을 이번 인사를 통해 드러냈을 뿐이다.

이 같은 사례는 아주 일부분으로, 이번 인사뿐만 아니라 예전에도 부지기수로 많았다. 능력과는 거리가 먼 사연(?) 있는 승진 사례는 넘쳐났다. '충성 서약'을 위한 독대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몸부림치던 사람들의 얼굴도 여럿 떠오른다. 한 서기관은 승진을 앞두고 단체장을 외국으로 모셔 가기도 했다.

기자의 경험상 기관'단체장이 '능력 인사'를 할 수 있는 비율은 20%를 넘지 않는다. 10명 중 1, 2명만이 능력을 인정받아 발탁된다는 의미다. 선거에 필요한(도움이 되는) 사람들을 우선시해야 하고, 견제 세력들의 인사 청탁을 들어줘야 하기에 기관'단체장이 '능력 인사'를 할 여지는 거의 없는 셈이다. 여태 선거를 의식하지 않고 '능력 인사'를 한 단체장을 본 적이 없다.

이 때문에 많은 능력 있는 인사들이 진가를 알릴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사라졌다. 아예 소리 없이 주저앉아 있는 인사들도 많다.

이런 평가에 대해 단체장의 측근에서는 '인사는 고유 권한'으로 왈가왈부할 성격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행정이 정치에 휘둘리는 현 시스템에서 단체장의 '입맛 인사'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대신 기자는 솔직담백한 인사 평을 듣고 싶다. 선거를 앞두고 필요한 사람을 중용했다고 밝힐 수 없다면 차라리 '능력 인사'를 했다고 떠들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승진을 바라는 사람들을 위해 기관'단체에서 예상을 깨고 승진한 사람들의 얘기를 종합해본다.

"혈연, 학연, 지역 연고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인사권자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인사권자의 의중을 헤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뜻을 이루려면 독대하는 자리를 가져야 합니다. 조금 모욕을 당하더라도 아부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됩니다. 인사권자가 자신에게 심한 말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인사권자는 능력 있는 사람을 부담스러워한다는 점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을 밟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지요. 그저 시키는 대로 온 힘을 다해 일하십시오. 그리고 인사권자가 자신을 알도록 방법을 강구하세요."

김교성 사회부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