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중세 때 가톨릭교회에는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이란 제도가 있었다. 교황청에서 성인을 추서할 때 그 사람이 행한 선행의 증거뿐만 아니라 일군의 신부들은 그 사람이 생전에 가톨릭 계율을 위반한 적이 없는지, 신에 대한 불경스런 일을 한 적이 없는지, 알려지지 않은 부도덕한 행위를 한 적은 없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해 교황청에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주로 후자의 임무를 수행하는 신부들을 악마의 변호인이라고 불렀다. 이 말은 오늘날 주로 강력한 반대의견을 제시해 다수의 의견을 흔드는 사람이란 의미로 일반화됐다. 이 같은 이견(異見) 제시자의 역할은 그들이 없었다면 특정 집단이나 사회가 잘못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을 줄여줄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다수 의견이 반드시 옳고 합리적일 수 없다는 점에서 이들의 존재는 집단이나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는 데 필수적이다.
이 같은 진리를 미국 헌법 제정자들은 일찍부터 꿰뚫고 있었다. 미국 건국 초기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시민들로 구성된 국가에서 과연 공화주의 정부가 존재할 수 있는가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중앙정부에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는 헌법 초안에 반대하며 연방에 가입한 주(州)의 자치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반연방파는 "공화주의 정부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서로 유사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지속적인 의견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알렉산더 해밀턴을 비롯한 연방주의자는 오히려 '의견 충돌'을 환영했다. 해밀턴은 이렇게 말했다. "의견의 차이, 그리고 정부 부서 간 (또는 입법부에서) 다툼은… 많은 경우 더욱 신중한 결정을 가능케 할 뿐만 아니라 다수자들이 지나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정치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끈 사건의 무죄 판결이 논란을 빚고 있다. 이들 판결은 상식이나 국민의 법감정과 배치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판결은 없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그 나름의 존재 가치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역설적이지만 올바르지 않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존 스튜어트 밀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 의견(이견)이… 설령 잘못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 의견을 억압하는 것은 틀린 의견과 옳은 의견을 대비시킴으로써 진리를 더 생생하고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대단히 소중한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낳는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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