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동에 베옷 입고
조 식
삼동(三冬)에 베옷 입고 암혈(巖穴)에 눈비 맞아
구름 낀 볕뉘도 쬔 적이 없건마는
서산에 해 지다 하니 눈물 겨워 하노라.
이 작품의 작자는 양응연, 김응연, 이몽규 등으로 표기된 경우도 있지만, 작품의 내용과 시대적 상황으로 보아 조식(曺植 1501~1572)임이 분명해 보인다. 호는 남명(南冥). 초야에 묻혀 살았으며 조정에서 여러 번 불렀으나 평생 벼슬을 하지 않았다. 학문과 후진 양성에 몰두한 선비로 명종(1534~1567)의 부름을 받고 사정전에 나아가, 임금께 치란(治亂)의 도리와 학문의 길을 글로써 아뢰고 산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는 일화도 전해온다. 살아 벼슬을 하지 않았지만 광해군(1579~1641) 때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저서에 『남명집』『남명학기』『파한잡기』가 있고, 가사 「남명가」「왕롱가」「권선지로가」가 있으나 전하지 않으며,『해동가요』와 『청구영언』에 시조 3수가 전한다.
초장의 '삼동'은 추운 겨울 석 달 동안을 가리키며 어지러운 세상을 상징한 것이다. '베옷'은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뜻하는데, 벼슬한 사람의 옷은 비단 옷일 것이다. '암혈'은 바위굴이란 말로 집도 제대로 없다는 뜻. 그러니까 벼슬을 전혀 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고생스럽게 산다는 의미다. 중장에서 아주 차원 높은 상징을 쓰고 있는데 '볕뉘'가 햇볕이 쬐는 세상을 가리키니까 중장 전체는 임금의 은혜를 한번도 입은 일이 없다는 말이다. 종장의 '해지다 하니'는 임금(중종)이 돌아가셨다(1544년)는 소식을 가리킨다. 그의 은혜를 입은 적이 없지만 돌아가셨으니 백성으로 마땅히 눈물 난다는 심사를 담은 작품이다.
끈질긴 당쟁의 역사 속에서 그 제물이 된 중종 임금의 비극과 당쟁에서 득세한 무리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 대한 일종의 반감 같은 것이 이 작품의 배경에 깔려 있다. 임금에 대한 충성이 곧 나라 사랑의 뜻이었던 때, 임금의 붕어 소식은 모든 백성들의 슬픔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눈물겨워 하는 것은 시대적 가치관으로 백성의 도리다.
주어야 받을 수 있고, 받아야 줄 수 있다는 뜻으로 '기브 앤 테이크' 란 말이 마치 진리인양 해석되는 요즘이지만 이 말 속에는 자본주의의 싸늘함이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 해도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진정한 사랑은 주는 것이고, 받지 않아도 무엇인가를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큰 사람임을 느끼게 해 준다. 문무학 시조시인·경일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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