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오늘,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오전 7시 30분 서울 원효로에 총성이 울렸다. 출근길 지프에 타고 있던 이승만 정권의 최고 실력자 김창룡(金昌龍'1916~1956) 소장이 총탄세례를 받고 죽었다. 오늘날의 국정원과 국군기무사령부를 합해 놓은 특무부대장의 암살 소식에 전국이 발칵 뒤집혔다. 한 달 후 범인을 잡고 보니 전직 특무부대원인 현역 군인들이었다. 이들은 "김창룡의 전횡과 비리를 보다 못해 민주화를 위해 거사했다"고 진술했지만 배후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관동군 헌병 오장(하사) 출신이었다. 육사 3기로 임관해 정보부서에만 근무하면서 6'25전쟁 전후 몇 차례에 걸쳐 사상이 의심스런 군인 5천 명을 쫓아냈다. 여간첩 김수임과 이주하'김삼룡을 붙잡고 수많은 공안'간첩단 사건을 도맡아 처리했다. 안두희가 김구 선생 암살의 배후로 지목한 것도 그였다. 진보 진영은 군인, 부역자, 민간인을 포함해 2만5천 명을 죽이고 독재 정권을 뒷받침한 역사의 죄인으로, 우익단체는 숙군을 통해 빨갱이를 솎아낸 영웅이라고 달리 평가한다. 어쨌든 일본군 시절에 배운 공작 정치'간첩단 조작사건을 한국에 이식시켰다는 악평을 받고 있다.
박병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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