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한국에서 일본어를 가르칠 때 어느 여학생한테 "사랑해요"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그 말이 일본어의 "사랑해요"와는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일본에서는 평생 살면서 '사랑'이라는 말을 몇 번 쓰지 않는다. 일본 사람에게는 애정이 없기 때문일까.
나는 한국과 일본에서 친구들이 연애하는 것을 가까이에서 많이 봤다. 누군가를 사모하는 마음의 깊이는 두 나라 사람이 같았다. 그러나 애정의 표현방법은 크게 달랐다. 한국인이 '표현하는 사랑'을 한다면 일본인은 '감추는 사랑'을 하는 것 같았다. 일본의 어느 학자는 일본인의 감정은 억제할수록 순수하고 강해진다고 했다. 예로부터 일본인들은 애정을 억누르고 상대에게 사랑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왔다.
한국은 어떨까.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라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상대에게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부닥친다. 최근에는 통신 수단의 발달로 연인 사이에 하루에도 몇 번이나 전화와 메일로 애정을 표현하고 확인한다. 르네상스 이후의 서양과 같이 자유로이 감정을 표출하는 한국인의 사랑은 일본의 '감추는 사랑'과는 정반대다.
감추어진 마음을 소중히 하는 가치관은 무사(武士)시대의 봉공정신(奉公精神)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봉건사회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주인에게 멸사봉공하는 것이 아랫사람의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주인인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짚신을 자기 체온으로 따뜻하게 해서 믿음을 얻었다고 한다. 추운 겨울에 주인이 차가운 짚신을 신고 감기에 걸리면 안 되기 때문에 남모르게 가슴에 품고 있다가 그가 외출할 때 내어 놓곤 했다.
보이는 문화, 보이지 않는 문화는 연애만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장례식 때 큰 소리로 운다. 과장해서 슬픔을 표현함으로써 고인에 대한 애정을 표하는 유교 사상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상주는 눈물을 참고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모습을 보고 외국인들은 "일본 사람들은 가족이 죽었는데도 웃고 있다"고 한심스럽게 바라본다. 남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고 남몰래 우는 것이 일본적 미덕이다. 슬픔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사자(死者)가 세상에 대한 미련이 남아 성불할 수 없다는 일본 불교의 가르침이라고도 한다.
일본인이 자기 마음을 억누르고 감추는 이유는 또 있다. 자기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먼저 해야 한다는 가치관 때문이다. 친한 친구나 연인끼리라도 직접적인 전화가 아니라 메일로 서로 연락하는 경우가 많다. 전화는 상대방의 시간을 구속하거나 일을 방해하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일본에서는 항상 자리의 분위기나 상대의 기분을 헤아려야 한다. 외국에 가서 일본인들이 '자기 주장을 하지 않고 감정이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 것은, 외국인들에게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일본인의 배려의 미덕이다.
나도 한국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 내 생각이 상대에게 잘 전달되지 않아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일본적인 문화가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 같이 "왜?"라는 질문을 받아야 했고, 말하지 않으면 내 마음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대의 말을 느긋하게 받아들이는 한국의 분위기 속에서 적극적으로 나를 표현하게 되었다. 그래서 일본으로 돌아온 나는 지금 완전히 '분위기 파악도 못 하는 사람'이 돼 있다.
'사랑'이라는 말은 왜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할까. 그것은 '나에게 당신은 소중합니다'라는 마음을 전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 말은 사람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상냥함을 만들어 내고 있다. 감추고 헤아려야 하는 일본의 '사랑'과는 다르다. "사랑해요"라는 한국 사람의 말에는 마음의 벽을 녹이는 따스함이 있어 좋다.
요코야마 유카·일본 도호쿠대 박사과정 연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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