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와 함께] 팔공산 산불감시원 체험

"저기 연기다" 황급히 상황실 무전…농민 밭태우기로 판명 '휴~'

산불 감시에는 무전기와 망원경이 필수. 무전기는 현장 상황을 수시로 구청 상황실과 산 아래 초소에 알려야 하고, 망원경은 정밀한 감시를 위한 필수품이다.
산불 감시에는 무전기와 망원경이 필수. 무전기는 현장 상황을 수시로 구청 상황실과 산 아래 초소에 알려야 하고, 망원경은 정밀한 감시를 위한 필수품이다.
산불감시 중 전방의 마을 인근에서 연기가 피어올라 산 아래 초소에 급히 연기 여부를 확인하도록 무전을 날렸다.
산불감시 중 전방의 마을 인근에서 연기가 피어올라 산 아래 초소에 급히 연기 여부를 확인하도록 무전을 날렸다.
동구청 상황실은 산불 감시와 진화의 총사령부다. 무전기를 들고 감시탑과 직접 무전을 주고받았다.
동구청 상황실은 산불 감시와 진화의 총사령부다. 무전기를 들고 감시탑과 직접 무전을 주고받았다.

이달 27일 '산불감시' 체험에 나섰다.

오전 9시 팔공산 산불을 감시하는 기관인 대구 동구청부터 방문했다. 도시과에 팔공산 산불감시 및 진화지휘부인 상황실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체험의 첫 코스. 상황실 직원들과 함께 CCTV를 보면서 현장상황부터 체크했다. 팔공산에 설치된 산불감시탑·산불감시초소들과 무전을 주고 받으며 산불 상황을 점검하는 일이었다. 50개의 초소, 5개의 감시탑과 무전으로 현장 상황을 간단하게 체크하는데도 30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상황실에서 '산불 이상 무!'를 확인한 후 현장 감시를 위해 '무장'을 서둘렀다. 붉은 색의 외투와 모자, 장갑, 망원경, 무전기를 챙긴 뒤 산불감시차를 몰고 팔공산으로 향했다.

30여분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은 팔공산 들머리에 위치한 공산터널 위 팔공산 자락 정상부. 이곳 내동감시탑은 동구청이 설치한 5개의 감시탑 중 가장 중요한 곳이다. 팔공산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어서다. 산불감시 야전사령부랄까. 팔공산에는 팔공산공원관리사무소와 별도로 동구청 소속 50명의 지킴이들이 산 정상과 산허리에 교대로 상주하며 산불을 감시(10월 1일부터 이듬해 5월 15일까지)하고 있다.

이날 대구 도심은 모처럼 강추위가 주춤한 '따뜻한 날씨'였다. 도심의 따뜻한 햇살은 기우. 골초인 기자는 산에 오르기 전 무장해제부터 '당했다'. 담배와 라이터를 빼앗겼고, 음주 여부도 검사받았다. 낮에 먹을 점심만 건졌을 뿐이었다.

감시탑까지는 급경사의 산길. 급경사에다 메마른 잡목숲을 헤쳐나가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30여분 '사투' 끝에 다다른 감시탑에는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해질녁까지 6시간 이상을 추위를 견디며 팔공산을 응시한 채 서 있어야 했다. 망원경 감시는 물론 산허리의 초소들, 구청상황실과도 쉼없이 무전을 주고 받아야 한다. 감시탑 근무는 1명뿐이어서 '외로움'도 만만찮은 과제였다.

오전 11시 산불감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은 뒤 드디어 3m 높이의 감시탑에 올랐다. 직각에 가까운 사다리를 오른 감시탑 내부는 1평 크기의 비좁은 공간이었다. 사다리가 놓인 공간을 제외하면 1평도 안 된다. 감시원 1명이 겨우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다.

먼저 망원경을 꼬마탁자에 놓고, 산허리 초소와 구청상황실에 산불감시 시작과 주변상황부터 알렸다. 본격적인 산불감시의 시작이다. 탑내에는 탁자와 의자가 있지만 감히 앉을 수 없었다. 잠시의 방심은 산불이라는 '불행'을 가져올 수 있어서다. 30여분 꼼짝하지 않고 팔공산을 응시했을까 눈부터 시려왔고, 종아리와 발바닥이 저리기 시작했다.

1평의 공간에는 결코 있어서는 안될 인화물질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석유난로와 김이 모락모락나는 주전자와 종이컵이 있지 않은가. 꽤나 놀랐다. 산불감시원들과 감시탑에는 인화물질을 휴대는 물론 비치도 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사연은 이랬다. 인화물질은 절대 휴대할 수 없지만 감시탑의 경우 한겨울 강추위가 서너달은 몰아쳐 오히려 추위가 산불감시를 더 힘들게 할 수 있다. 그래서 감시탑에 대해선 철저한 관리하에 난로를 비치한 것. 또 몸을 녹이기 위한 온수와 도시락을 데울 수 있는 난로가 절실한 것도 인화물질 비치의 이유였다. 이날 기자는 하루종일 산불감시보다는 추위와 더 싸웠기에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감시원들은 서 있는게 습관이 됐다. 작은 탁자가 있지만 앉지 않는다고 한다. 잠시 한눈을 팔다 구청상황실에서 산불 발생을 먼저 알아채면 산을 내려와야(사표를 써야 한다는 뜻)한다고 했다. 산불감시는 하루 종일 앞만 바라봐야 하고, 적막감과 싸워야 하는 중노동이다. '휴대폰'이 유일한 친구일 뿐이다. 감시탑에서의 또 다른 고통은 생리현상. 대변의 경우 아예 집에서 나올때 '하루치'를 보고 나온다고 한다. 소변은 그렇지 못해 부득이할 경우 감시탑 아래 마련된 일정 '공간'에서 해결한다는 것이다.

한시간 정도 흘렀을까. 팔공산 미곡동 마을 부근에 희미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급히 마을 인근의 초소에 무전을 했다. '여기는 내동감시탑, 마을 연기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20여분의 초긴장 상태를 보낸 뒤 다시 무전기에 불이 깜빡였다. 마을의 한 농부가 밭에 불을 놓은 것이라며 소각완료 후 보고한다는 내용이었다.

그제서야 철렁하던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전문감시원도 아닌 일일체험인데, 산불이었으면 '큰 일'을 낸 것이 아닌가라는 걱정때문에 때아닌 땀까지 났다.

가슴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감시탑에 비치된 항공지도와 현장을 비교해 보았다. 현장의 지리를 상세히 숙지해야 산불이 발생했을때 정확한 지점을 상황실과 초소에 알릴 수 있다.

내동감시탑이 야전사령부라는 의미는 대구 쪽 팔공산이 모두 시야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왼쪽으로부터 대왕재, 파계사 시설지구, 내동 큰마을과 마을 뒤편의 팔공산 서봉과 동봉, 동화사와 동화사시설지구, 갓바위, 백안마을과 구암마을 등이 내동감시탑의 '레이더권'이다.

내동감시탑은 2008년 파계사 쪽에 큰 산불이 발생한 것을 가장 먼저 발견해 신속한 조치로 조기 진화했고, 구암마을과 한시골에서 발생한 여러 산불도 조기 발견 및 초동 진화로 산불을 '꼬마불' 수준으로 만들어 버렸다.

산불감시는 처음해 보는 '중노동'이었기에 시간이 갈수록, 그냥 가만히 서 있는데도 허리와 다리는 내것이 아니었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그것도 선 채로. 점심은 컵라면이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해치웠다. 여유있게 점심을 먹을 겨를과 마음의 여유가 허락되지 않은 것이다.

점심식사 후 또 다시 오전의 일과가 반복됐다. 응시, 무전, 상황체크 등등. 오후 5시30분 해가 질 무렵 마지막 상황을 초소와 상황실에 알린 뒤 꿈쩍도 않은 다리와 허리를 겨우 추스려 탑을 내려올 수 있었다. 기자가 내려간 뒤에도 탑의 감시원은 1시간을 더 근무해야 했다. 해질 무렵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산불이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해서다.

산불감시는 하루종일 서 있는데다 산불발생에 대한 걱정 등으로 감시원들에겐 적잖은 스트레스를 안긴다. 그래서 소화불량이 잦다고 한다. 지금이야 경기 침체로 지원자가 많지만 과거에는 2, 3개월 만에 산불감시를 그만두는 이들이 꽤나 있었다고 한다.

감시탑이 경제학에서 '개론'이라면 초소는 '각론'이다. 초소는 산불감시는 물론 산불 예방을 위한 순찰과 등산객들을 대상으로 한 인화물질 수거 등도 같이 한다. 요즘의 등산객들은 산불에 대한 사전 교육이 잘돼 있어 담배와 라이터 수거에 매우 협조적이라고.

산불감시원들은 주 5일 근무제다. 하지만 주말과 휴일은 무조건 근무다. 이때가 산불 발생 확률이 가장 높은 날이기 때문이다. 특히 4, 5월 봄철은 감시원들이 가장 긴장하는 시기. 산불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달이어서 주간은 물론 야간에도 감시에 나선다.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때이기도 하다.

산불감시원들은 매월 90만원 정도를 받는다. 박봉이다. 하지만 '90만원'의 노력은 수십, 수백원억원의 산불피해를 줄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종규기자 jongku@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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