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 '아바타'라는 유토피아의 대용품

'특이점이 온다'의 저자 레이 커즈와일의 주장에 따르면 2043년이 되면 과학기술의 발전이 특이점을 통과한다. 여기서 특이점 통과란 과학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한다는 뜻이다. 이 시기가 되면 모기만한 무인정찰기가 공중을 날아다니고 모든 전쟁을 로봇이 수행하며 인간의 신체를 버전 3.0 수준으로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다.

영화 '아바타'에서 제이크 설리의 DNA와 나비족의 DNA를 합성해 생긴 아바타는 그 중의 하나다. 레이 커즈와일에 따르면 미래에는 인간의 신체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가상현실에서나 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가상현실은 늘 실제 현실이 되어 왔다. 1930년대에 나온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나타난 인공수정관 태아 문제는 21세기에 그대로 현실로 진행되고 있다. 맞춤형 배아줄기세포 문제도 따지고 보면 별거 아니다.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바타'에 나오는 소아마비 환자 제이크 설리의 두 다리쯤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버전 3.0의 인간 신체가 현실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아바타'를 읽는 방법은 다양하다. 영화 '아바타'에서 우리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침략 문제를 손쉽게 읽어낼 수 있다. 영화 '아바타'에서 하늘의 사람들이 행성 판도라의 거대한 나무 밑에 무궁무진하게 매장되어 있는 지하자원 언플로티늄을 약탈하고자 판도라 행성을 침략하는 것이나 미국이 이라크의 석유 자원을 약탈하고자 이라크를 침략하는 것은 닮은꼴이다. 판도라 행성 침략에 하늘의 사람들이 몰두하는 동안에도 과학자는 전혀 오염되지 않은 온전한 생명체들이 살아 숨쉬는 판도라의 숲속 생태계에 탄복한다. 새와 아바타의 교감, 숲 속을 떠다니는 생명의 꽃씨들, 생명의 기가 충만해서인지 중력을 거부하는 듯 떠다니는 산들, 한마디로 말해 인간과 자연의 합일이 이루어져 있는 유토피아적인 공간 판도라 행성은 하늘의 사람들에게 이상향 그 자체다.

숲 속의 뿌리들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서로 연결되어 있는 판도라 숲 속의 공간은 식물, 동물, 인간이 서로 네트워크화되어 있는 교감의 공간이다. 바로 그 교감이 막강한 에너지를 발산해 판도라 행성을 하늘의 사람들로부터 구원해 주는 장면을 기억해 보자. 판도라 행성을 폭격한 하늘의 사람들이 지상전을 벌일 때 코뿔소같이 생긴 판도라의 괴물이 숲 속에 네트워크화되어 있는 에너지 정보를 받고 나타나 하늘의 사람들을 공격하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나비족들이 과학자의 생명을 살리고자 혼연일체가 되어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에너지를 모으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이러한 장면들은 사이비적인 종교 의식 장면을 재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네트워크화된 숲 속 나무 뿌리들의 접속과 네트워크가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는 인간 제이크 설리를 하이브리드형 생명체로 둔갑시켜 나비족들 사이에 투입하는 수준의 기술이나, 산들이 공중을 떠다닐 정도로 원시적인 생명의 에너지가 충만한 판도라 행성의 생태 수준은 오늘날 현대인들로 하여금 유토피아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버전 3.0 수준의 인간 신체를 만드는 것이 유토피아일 수도 있고 아무리 담배를 피워대도 암에 걸릴 것 같지 않은 판도라 행성의 생태계가 유토피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토피아는 되돌아갈 수 없는 노스탤지어를 강박하는 허구에 불과하다. 버전 3.0 수준의 인간 신체를 만든다 해도 그 혜택은 소수에게만 돌아갈 뿐이다. 아비규환 상태에 빠진 아이티 사태와 판도라 행성의 생태계 또한 서로 무관하다. 판도라 행성에 도착한 제이크 설리나 4D 안경을 끼고 제이크 설리처럼 판도라 행성 숲 속 안으로 눈을 들여놓은 우리나, 여전히 비정규직, 프리터 등 불안정한 노동이 지구적으로 팽창하는 자본주의의 모순 속에서 살고 있다.

영화 '아바타'를 보면서 우리가 우울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판도라 행성으로 돌아가 오염의 티끌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생태의 낙원에 발을 디딜 수 없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버전 3.0의 인간 신체를 만든다고 해도 그것은 곧 바로 과학제국주의를 낳을 뿐이지 그것으로 하늘의 사람들이 사는 지구의 자본주의적 모순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지구에서 판도라로 가는 여행길 자체가 우울하다. 자본주의의 모순이 넘쳐나는 지구를 뒤로하고 나비족들이 거주하는 판도라 행성으로 간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우울하다. 유토피아의 대용품인 아바타에 열광하는 사실까지도.

이득재 대구대교수 러시아어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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