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없는 조직이란 없다. 정부, 직장은 물론이고 자그마한 계모임에도 내부 갈등이 있다. 인간의 이기심과 경쟁심으로 빚어지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조직 내 갈등이 가장 심각하고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곳은 어디일까? 전문가들은 군대라고 한다. 저돌적으로 타협 없이 밀어붙이는 방식에 익숙한 집단이기 때문이다. 장교와 하사관, 사관학교와 비(非)사관학교, 출신지별, 기수별 갈등도 있지만 군별 갈등은 항상 심각한 양상을 보이기 마련이다.
제국주의 시대 일본 해군의 적은 외국 군대가 아니라 일본 육군이었다고 한다. 1941년 태평양전쟁을 앞두고 육군은 전쟁불사론을 폈지만, 해군은 전쟁불가론을 주장했다. 진주만 공격의 입안자인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고노에 총리에게 "전쟁은 정신력으로 하는 게 아니라 물량과 기술의 대결"이라며 "반 년이나 일 년은 맘대로 설칠 수 있지만 그것이 한계"라고 반대했다. 결국 육군 강경파에 떠밀려 승산 없는 전쟁을 시작했다가 패망의 길로 접어든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육군참모총장과 해군참모총장은 백악관 회의 때 보고조차 제대로 하지 않다가 대통령과 면담할 때 따로 보고할 정도였다. 웨스트포인트(육사)와 아나폴리스(해사) 출신 장성들은 병력과 장비의 할당, 작전 주도권을 놓고 끊임없이 다퉜고, 지금도 비슷한 양상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육참총장은 해군을 모르고, 해참총장은 육군을 모르니 내 뜻대로 할 수밖에 없지"라며 통수권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래서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록되는 모양이다.
며칠 전 서해 5도를 지키는 해병대에 대포병탐지레이더(AN/TPQ)가 배치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북한에서 대포를 쏘아 대는데 탐지 레이더가 없어 어디서, 얼마나 날아오는지조차 몰랐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육군이라면 당연히 배치됐겠지만 해병대가 소수군(少數軍)이라 그럴 것이라고 했다. 전략 요충지를 방어하는 개념보다는 군별 이해관계를 중시하는 군 내부 분위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전보다 나아졌다지만 육군이 모든 걸 독식하려는 경향은 여전하다고 한다. 국방부의 요직도 육군 장성만 차지한다. 그래서 일부에서 국방부를 '육방부'(陸防部)라고 부른다. 갈등은 경쟁을 위한 필요악이지만, 염치없는 독주는 국가의 존망까지 좌우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배울 필요가 있다.
박병선 논설위원 l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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