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판이야기] 작가들은 왜 본명 대신 필명을 많이 쓸까

몇해 전 소설가 이인화씨를 만나러 이화여대에 갔다가 잠시 멍한 적이 있다. 학과 사무실을 찾아가서 '이인화 교수님 방은 몇 호 입니까?'라고 물었는데 조교가 못 알아듣는 것이다. 그의 본명이 류철균이라는 것이야 알고 있었지만, 이인화란 이름에 워낙 익숙해 있었던 탓이다. 학과 사무실 조교 역시 류철균 교수의 필명이 이인화라는 것쯤이야 알고 있었겠지만, 학교에서는 본명을 더 자주 쓰는 탓에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이인화 교수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무의식적으로 '어디 이씨인가요?'라고 엉뚱한 본관을 묻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류씨에게 이씨 본관을 물었으니 말이다.

작가들 중에는 이인화 교수처럼 필명을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쓴 마크 트웨인의 원래 이름은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이다. 미시시피강을 오가는 증기선의 견습사원으로 일할 때 강물의 깊이가 운항에 가장 알맞은 곳에 이르면 '두 길'이라고 외쳐서 알리는 역할을 했는데, 그 외침이 곧 필명이 된 셈이다.

'제인에어'의 작가 샤롯 브론테도 커러벨이라는 필명을 썼고, 폭풍의 언덕을 쓴 에밀리 브론테도 엘리스라는 필명으로 책을 내기도 했다. '마지막 잎새'의 작가 오 헨리의 원래 이름은 윌리엄 시드니 포터다. '동물농장'과 '1984'를 쓴 조지 오웰의 본명은 에릭 블레어였다.

우리나라에도 필명을 쓰는 작가는 많다. 소설가 김원일, 김형경, 김사과 등을 비롯해 시인 김경주, 김승해, 소설가 서진, 윤고은 등은 모두 필명이다. 본명이 평범해서 매력이 없다고 느껴서 그런 경우도 있고, 마침 본명이 유명한 기성 작가의 이름과 같아서 다른 이름을 짓는 경우도 있다.

때때로 본인이 그 작품을 썼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 필명을 쓰는 작가도 있다. 작품 내용이 충격적이거나, 지인이나 가족들에게 자신의 작품 활동을 알리고 싶지 않을 때, 사생활을 보호받고 싶을 때 등 이유는 많다.

그러나 작가들이 이름을 바꾸는 가장 큰 이유는 '원래의 자신을 문학적으로 살해하고 다른 인물로 태어남'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이름을 바꾸는 행위는 단순히 문자로 표기되는 자신을 바꾸는 것 이상이다. 필명은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을 '문학적으로 부정'하고 '새로운 생명'을 스스로 부여하는 제의식인 셈이다. 말하자면 '예술'을 향한 '욕망'이 새로운 인물을 낳는 것이다. 그들이 만드는 창작의 세계란 것이 결국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행위'라고 볼 때 창작과 개명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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