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의 마지막 흔적 '만주국'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국가도 생물처럼 새로 태어나기도 하고 완전히 소멸하기도 한다는 국가유기체론자들의 주장처럼 만주국도 소멸해버린 것일까? 근래 제작된 세계 지도들을 보면 '만주국'이 표시된 곳은 전무하다. 말 그대로 만주국은 지구촌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국가이다. 그럼 어디로 어떻게 사라졌을까? 누루하치 이래 수백년 동안 '청'이란 이름으로 중국을 지배했던 민족이 만주족이다. 중국 역사 이래 가장 넓은 지역을 통일했고 가장 강력한 제국을 세웠던 왕조가 청이다. 비록 일본 관동군의 꼭두각시가 되는 수모를 겪다가 일본 패망 이후 중국의 동북 3성으로 편입되어 버렸지만 만주는 여전히 만주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그대로 있고, 살던 땅이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땅과 사람의 소속이 만주국에서 중국으로, 지역 명칭이 동북3성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만주가 만주 아닌 것은 아니다.
소수의 만주족이 만주지역을 발판으로 거대 중국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만주는 지정학적으로 중국 동북지역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중심지였다. 상해가 유럽 각국들이 왕래하는 국제도시였던 것처럼 만주지역 역시 유목민과 농경민,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교류하는 국제도시였다. 한국, 일본과 소통의 장이었고, 러시아, 유럽으로 통하는 관문이었다. 이 장(場)에서 사람과 물건, 예술과 문화가 오고가고 쌓였다. 그래서 수백년 강건한 만주족 청나라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지금도 만주는 동북아의 중심이다. 이동진 교수를 비롯한 각 분야의 중국 전문가들이 집필한 연구서 『중국동북지역연구, 방법과 동향』(동북아역사재단, 2010)을 보면 중국 동북지역 만주가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북지역은 중국의 변경인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 한국, 일본, 몽골이 부딪히는 동아시아의 변경이다. 연구서의 내용을 보면 역사상 변경지역이 가지는 특성으로 갈등과 교류의 기회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대목이 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 중국 동북지역 만주가 지역갈등의 장이 아니라 지역협력의 장이 되어야만 동북아의 발전과 평화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미래도 장밋빛 청사진을 그릴 수 있다. 연구는 역사적 시각, 비교적 시각, 교류적 시각, 소수민족적 시각으로 나누어서 진행되었다. 공동 저자들의 전공 분야를 보면 중국 정치, 중국 역사, 중국경제, 중국의 소수민족을 포함해서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전공자까지 다양하다. 활용된 자료도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등 관련국가의 언어가 전부 포괄되어 있다. 만약 독자들이 책을 평하라고 요청한다면 '중국동북지역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가 읽어야할 필독서'라고 규정하고 싶다.
연구서의 성격상 딱딱하고 무료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다른 연구를 위한 자료집이자 이론서로서도 기능을 하지만 실제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서 재미있고 유용하다. 특히 가장 최근에 진행되는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중요한 골자를 언급하면, 지금 이 지역은 과거 만주가 가졌던 조건을 기반으로 국제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교류 중심지로서 만주의 기능이 부활하고 있다. 내몽골자치구의 입구도시인 만주리 등 몇몇 도시는 국제교통 요지로 부상하고 있고, 이는 중국의 동북진흥정책과 러시아의 극동개발정책과 맞물려 상승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주도하고 동북아 5개국(한국, 중국, 러시아, 북한, 몽골)이 참여하는 다자간지역협력 프로젝트인 두만강지역개발(TRADP)도 진행되고 있다. 변경도시들 간에도 다국적 경제협력구가 설립되고 있다. 중국, 러시아, 북한 3국이 접경해 있는 혼춘'하산 경제협력구, 중국과 북한 간의 혼춘'나진, 선봉 경제협력구 등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만약 지금처럼 빠른 속도로 중국 동북지역 만주가 부활한다면 누가 그 중심에 서야할까? 서둘러야 할 긴급 사안이다.
경북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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