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세의 꿈 접고…고독한 군자의 마음 화폭에

[책] 공재 윤두서 / 박은순 지음 / 돌베개 펴냄

종이를 뚫고 나올 듯 강렬한 눈빛, 넘치는 기개와 결연한 의지, 그 강직한 얼굴에 고독과 우수까지 엿보이는 풍모. 자화상으로 널리 알려진 조선시대 선비화가 공재 윤두서(1668-1715)의 자화상이다.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한 윤두서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이 책 '공재 윤두서'는 그의 생애와 작품, 내면세계를 추적해 조선후기 선비 그림의 선구자이자 개척자로서의 면모를 밝히고, 선비 화가로 누렸던 당시의 명성을 되살리고 있다.

공재 윤두서는 조선 후기 선비 화가다. 자화상뿐만 아니라 풍속화와 산수화에서도 회화의 새로운 방향과 방법을 제시해 조선후기 화단의 새 시대를 연 인물로 평가받는다.

남인의 핵심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났고 재능까지 가졌던 윤두서는 과거를 통해 출세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남인 집안의 종손으로 남인과 노론, 소론 간의 당쟁으로 주변 인물들이 유배를 떠나거나 목숨을 잃는 광경, 세도의 부침을 수없이 목격했기에 불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던 와중에 윤이후가 관직을 버리고 귀향하자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1691년 그의 나이 24세 되던 해였다.

'눈 내려 두터운 구름과 합쳐지니/ 하늘은 낮고 밤은 캄캄하네/ 매서운 추위 두려워서/ 매화꽃 일찍 피지 못하네'

부귀하나 정치적 멸화가 한순간 자신의 목숨은 물론이고 집안을 몰락시킬 수 있음을 매화도 필 수 없는 겨울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결국은 매화가 피는 시절, 즉 뜻을 펼칠 세상이 올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매화가 일찍 피지 못하나 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의 기대는 점점 허물어지고, 급기야 은둔적인 태도를 취한다. 집안의 장손으로, 집안을 보존해야 했던 윤두서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대신 서화와 학문에 심취해 은둔적 삶을 택했던 것이다.

'홀로 가고 홀로 앉아 또한 홀로 읊조린다/ 골짜기와 수풀 찾아들다 깊어진 줄 모르네/ 다만 만나자는 뜻으로 인연해서 잊기 어려운 곳이니/ 산은 스스로 우뚝 높고 물소리 나는구나' -인왕산 동쪽 시내에서 우연히 읊다-

'부귀를 내 바라는 것 아니요/ 공을 세워 이름 내는 것도 때가 있다네/ 위아래 사람들 우환 없고/ 사계절 아무 일 없이 잘 지내길 바라네' -입춘일에 축원하다-

시뿐만 아니라 그림에서도 윤두서의 은둔자적 태도와 그럼에도 야망을 떨칠 수 없는 선비의 고독이 드러난다. 그의 풍경화 '임간모옥도'는 잔뜩 찌푸린 겨울날 아무도 없는 산속의 빈 정자와 주변에 서 있는 몇 그루 나무를 표현하고 있다. 추운 겨울, 속살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숲, 아무도 없는 정자 등은 자신의 뜻을 펼 수 없는 척박한 세상에 대한 은유다. '한림서옥도' 역시 추운 겨울 깊은 산속을 그렸다. 산속에 자리 잡은 집에 선비가 홀로 앉아 있고, 하늘은 어둡고 나무는 헐벗어 한림이다. 윤두서는 겨울의 헐벗은 산, 설경, 빈집 혹은 홀로 있는 집 등을 자주 그렸다. 자신의 내면이었을 것이다.

윤두서는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농민과 서민의 삶을 살폈다. 나물 캐는 여인, 짚신 삼기, 목기 깎기 등은 서민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었고, 조선후기 풍속화의 원동력이자 자양이 됐다. 그는 이념과 명분을 강조하며 공리공론을 일삼던 기존의 성리학풍에서 벗어나 새로운 선비그림의 세계를 개척했다.

흔히 진경산수화는 정선, 풍속화는 김홍도, 문인화는 김정희라고 알려져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윤두서가 이룬 선구적 업적과 성취를 확인할 수 있다. 책은 윤두수의 일생을 연대기적으로 재구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삶의 여정과 그림을 정리한 것이다. 윤두서가 직접 필사한 문지 '기졸(記拙)'과 윤두서와 관련된 여러 가지 사건, 일화를 수록한 문서 및 기록을 조사해 그의 삶을 미시적으로 재구성했다. 376쪽, 2만3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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