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살아보려 발버둥을 쳐봤지만 삶은 녹록지 않았다. 뇌성마비 딸을 보살피기 위해 허드렛일을 닥치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는 16년 전 신부전증을 앓으면서 몸져눕게 됐다.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모녀는 임대아파트에서 기초생활수급비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엄마(권정자·63·대구 중구 남산동)의 이야기
결혼 5년 만에 어렵게 얻게 된 예쁜딸 정아. 정아는 돌이 되기 전 경기를 심하게 일으키면서 뇌성마비가 왔다. 일자리도 없이 가정을 돌보는 데는 별 관심이 없었던 남편은 아기가 뇌성마비라는 이야기를 듣자 아예 밖으로만 나돌기 시작했다. 아이와 단둘이 끼니를 잇기도 힘들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아기를 할머니에게 맡겨두고 친척이 있는 대구로 내려왔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을 해 돈을 벌었고, 1년 만에 아기를 데려왔다. 손녀를 키우는 일이 쉽잖았던지 할머니는 별말 없이 아기를 내어줬다.
정아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 우연하게 한 수녀님과 인연이 닿게 됐다. 수녀님은 비행기삯만 있으면 정아를 미국으로 데려가 무료 수술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정아가 다른 아이들처럼 정상적으로 걸을 수만 있다면 비행기삯이 대수겠는가. 수녀님을 믿고 정아를 미국 하와이로 보냈다. 그리고 정아는 그곳에서 1년 동안 수술과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어린 정아가 적응하기에 하와이의 병원생활은 너무 힘들었나보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2차 수술을 위해 또 한번 미국으로 가야한다고 했지만 정아는 "가지 않겠다"며 울며불며 완강하게 버텼다. 아무리 달래봐도 소용이 없어 결국은 수술을 포기하는 수밖에 었었다. 이제 철이 든 정아는 "그때 수술을 한 차례 더 받았으면 목발을 짚고서라도 일어설 수 있었을지 모른다"고 후회를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정아 몫의 삶인 것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바깥 출입이 불가능한 정아. 전문대를 나왔지만 일자리를 가질 수 없다. 일자리를 가지게 되면 수급권 박탈로 치료비를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에 취직 기회가 생겨도 포기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대 한창 나이에 집에만 갇혀 지내고 있는 정아가 앞으로 얼마나 더 절망의 삶을 이어가야 할지 미안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딸(한정아·28)의 이야기
뇌성마비 딸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엄마는 밤늦게까지 식당일을 했다. 어머니는 번 돈 전부를 딸의 재활치료비로 고스란히 털어넣으면서도 힘들다는 푸념 한번 내뱉지 않았다.
그러던 중 엄마가 신부전증을 앓게 됐다. 내가 13세 무렵이었다. 엄마의 증상은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심해져만 갔고, 6년 전부터는 이틀에 한 번씩 혈액투석을 받고 있다.
투석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제 혈액투석을 받는 일도 쉽지 않다. 지난해 11월 투석 중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팔의 혈관도 막혀 인공관을 삽입하는 수술을 한차례 더 받아야 하지만 비용 부담으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다리는 사마귀로 얼룩덜룩 볼 수 없을 정도다. 요독이 다리로 내려와 자꾸 사마귀가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한 달에 두세 번씩 피부과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한 번 치료비만 6만, 7만원에 달한다.
내가 너무 많은 고생을 시켜 엄마가 병을 얻은 것만 같아 미안한 마음뿐인데, 엄마는 늘 내게 미안하다고 하신다. "내가 건강할 때는 업어서 바깥 외출이라도 시켜줬었는데…"하며 비틀린 내 다리를 쓰다듬고 눈물짓는 날이 많다.
성인이 된 내가 엄마를 보살펴야 하는데 하반신이 마비돼 뭐 하나 해드릴 게 없다. 당장 수술에 필요한 병원비를 마련해 드릴 수도, 덜렁덜렁 떨어져 내리는 틀니 탓에 제대로 씹지도 못하는 엄마에게 아무런 힘이 될 수 없는 딸인 사실이 가슴 아프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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