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이티는 지금] "정부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 대통령궁 앞에는 지진 후 집을 잃은 난민 1만여명이 모여 대규모 난민촌을 이루고 있다. 모현철기자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 대통령궁 앞에는 지진 후 집을 잃은 난민 1만여명이 모여 대규모 난민촌을 이루고 있다. 모현철기자

구호활동 후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 시내를 둘러봤다.

먼저 간 곳은 포르토프랭스에서 가장 큰 '라살린' 시장. 항구 옆에 위치한 이 시장에서는 옷과 각종 농산물을 파는 상인들로 활기가 넘쳤다. 사고 파는 사람들의 흥정하는 소리로 시장은 떠들썩했다. 이곳은 지진 뒤 생필품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더 붐비게 됐다.

반면 정부청사들이 위치한 지역은 조용했다. 외교통상부와 국회의사당 건물이 무너져 있었으나 미국 대사관 건물은 멀쩡했다. 시민들은 "미국 대사관은 멀쩡한데 왜 정부 건물만 무너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시민들은 "지금 정부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난했다.

무너진 국회의사당의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청사 벽에는 정부를 비난하는 낙서가 가득했다.

국회의사당 앞 항구에는 구직자들로 북적였다. 그 옆 미국 대사관과 베네수엘라 대사관 앞에는 아이티를 떠나기 위해 비자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포르토프랭스 번화가인 '그라위' 거리는 폐허가 됐다. 이 지역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원래는 부유한 사람들이 살았으나 지진 피해가 적은 곳으로 이사갔다고 한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주민들은 아직도 건물 잔해에 시체가 깔려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경찰서도 무너져 있었다. 무너진 교도소에는 죄수 수천명이 탈옥했다고 한다. 이곳 번화가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은 프랑스의 에펠탑을 본떠 만든 것이다. 건물 앞 대형시계는 지진이 발생했던 시각인 오후 3시 30분에 멈춰서 있었다. 2차 붕괴의 위험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으나 당장 복구는 힘들어 보였다.

지진으로 붕괴된 대통령궁 맞은편에는 난민 1만여명이 모여 대규모 난민촌을 이뤘다. 이곳은 원래 공원이었다. 이재민들이 구호품을 받기 위해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난민촌이 형성된 것. 아이들은 천막 앞에서 천진난만하게 공을 차면서 놀고 있었다.

난민촌에서 만난 이재민들은 음식과 물, 생필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미셸 프리만(40)씨는 "아이들을 위한 우유와 물이 필요하지만 아이티 정부에서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UN WFP(세계식량계획)가 구호물품을 나눠주는 곳에는 사람들이 줄 지어 있었다. 수레와 어깨에 배급품으로 받은 쌀을 받은 사람들은 기쁜 표정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UN에서 나눠주는 구호품을 교환할 수 있는 표는 암표상들에게 들어가 30달러에 팔리고 있다.

토니 막슨(37)씨는 "아이티 국민들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외국 힘을 빌려 일어서려고 한다"면서 "스스로 일어서려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중원(31) 한국기아대책 매니저는 "아이티 재건은 20, 30년 정도 걸릴 것"이라며 "아이티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교육과 의식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티 국민들에게 의식 변화 등을 교육하지 않으면 모든 지원은 구멍 난 독에 물 붓기"라고 덧붙였다.

아이티 포르토프랭스에서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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