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겨울에는 캄보디아, 여름에는 인도네시아로 의료봉사를 갔었다. 그곳에선 많은 사람들이 신발을 안 신고 맨발로 수㎞를 걸어서 진료를 받으러 오는데 발바닥이 신발창처럼 딱딱한 것을 보고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라며 그곳 경제사정이 우리나라 오륙십년 전보다 훨씬 못하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
최근 아이티 지진 참상을 전하는 뉴스를 접하면서 아이티의 현실이 필자가 상상할 수 없는 몇 백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정말 저럴까? 말도 안 돼"라는 비현실로 다가왔다.
아이티는 이번 지진으로 15만명 이상 사망했고 생존자들은 평소 주식(主食)으로 사먹던 진흙과자(진흙에 물과 소금, 마가린을 섞어 5시간 정도 말려 만든 것으로 소화가 잘 안 돼 항상 배가 부른 효과가 있다는 이유로 가난한 아이티 아이들에겐 주식처럼 여겨진다)조차 구하지 못해 굶주리고 있다고 한다.
규모 7.0의 강진(强震)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돌 무더기와 시체만 남았다는 CNN 방송의 현지 특파원은 "거리에는 온전히 남아있는 건물이 거의 없다. 온통 시체와 울부짖는 주민뿐이다. 전쟁터가 이곳보다 차라리 낫다"고 전했다. 절망에 빠진 아이티 국민은 "사람들이 첫날에는 비명만 질렀고, 이제는 멍한 얼굴로 노래만 불러요. '신이 있다면 도와 달라'고."
많은 생명들이 먹을것이 없어 진흙과자를 먹으며 불쌍히 살다가 건물더미에 깔려 시신조차 수습되지 못하는 처참한 주검으로 방치된 모습과 아이티 사람들이 신에게 도와달라고 절규하는 화면을 접하면서 우리가 아이티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보다, 너무나 안됐다고 가슴이 보내주는 신호에 즉각적인 반응을 하는 것이 저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는 자각이 이내 들었다.
각종 단체에서 구호와 모금의 손길을 모으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주는 도움이 올바로 전달될까 하는 계산하는 머리보다 가슴이 보내는 신호에 반응하여 그 손길에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줄 수 있어야 하겠다.
우리에게도 진흙과자의 시절이 있었다. 조선시대 흉년이 들면 진흙으로 떡을 해먹었다는 기록이 있고 송기떡과 송기죽, 쌀과 보리의 겨를 갈아 찐 개떡은 1960년대까지도 시골에선 흔히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아이티도 하루빨리 오늘의 이 어려움에서 벗어나서 "그때 그 진흙과자를 아십니까?"하며 진흙과자를 못 살던 시절의 유산으로 기억하는 풍요로운 나라로 발전하기를 기원해 본다.
이 희 경 053)620-3731. lhk@med.y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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