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인으로 살아가기에도 녹록하지 않은 세상에 두 눈을 보지 못하고, 오른손마저 쓸 수가 없다면 어떻게 살아갈까? 생각만 해도 그 구차스러움에 가슴이 답답해지겠지만 그런 모습으로도 늘 반듯하게 얼굴에 그늘 없이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대구 달서구 용산동에 위치한 대구시각장애인복지관 김진해(47) 관장. 초등학생(8) 때 고향 군위 녹동의 시냇가에서 놀던 중 친구가 주워온 시뻘겋게 녹슨 포탄을 호기심에 만지다가 사고를 당한 뒤 중학교 진학을 포기한 채 10여년을 '두문불출'했다.
"당시는 죽지 못해 살았죠. 입는 것, 먹는 것 소리내지 않고 보살펴 주시는 부모님 덕에 살 수 있었죠."
그 후 24년을 보살펴 주시던 어머니가 지병으로 세상을 뜨자 아버지와 함께 살아간다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빈소에 올릴 밥을 직접 하면서 어머니의 힘이 그만큼 컸다는 사실을 알았고 '아들이 장애'라는 아픔을 견디고 참아낸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처음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그래서 부모님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주어진 환경에서 아름답고 값진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는 '천사'로 다가온 부인 성진화(47)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지금도 부인이 매일 남편의 손을 잡고 집에서 용산동까지 한 시간 동안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면서 출근을 시켜줄 정도로 금슬이 좋다.
"고향에 있을 때 배주관(전 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장) 선생으로부터 점자와 역리학을 배웠다"는 김 관장은 어렵게 모은 돈을 친구 때문에 사기를 당하는 등 인생역정을 겪은 뒤 공부를 하기로 하고 1999년에 미래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이듬해 대구에서 처음으로 오픈한 '대구점자도서관'의 관장직을 위임받아 녹음도서·전자도서·학습도서 보급과 음성프로를 통한 컴퓨터정보화교육 등을 시행한 뒤 2006년 대구시각장애인복지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왼손만으로 자판을 두드리며, 인터넷정보검색사 2급 자격증을 따낸 김 관장은 누가 컴퓨터를 가르쳐 달라고 하면 길을 가다가도 따라가서 가르쳐 줄 정도다. 그는 지금도 계명대 대학원(사회복지학)에서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살아오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 간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던 형님에게 간을 이식해준 것이었다"고 말하는 그는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사회 참여를 원하고 있지만 기회가 많지 않아 아쉽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글·사진 장양숙 시민기자 fn3496@hanmail.net
도움:황재성기자 jsgold@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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