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와 함께] 설 뻥튀기·강정 만들기 체험

"뻥이요~" 가족을 부르는 설레임

설이 다가오면서 농가는 분주하다. 부엌 가마솥에는 조청이 노랗게 고아지고, 아이들은 쌀자루를 둘러메고 읍내로 뻥튀기하러 나선다.

설대목이 비치면 뻥튀기 기계가 돌아가는 참기름집. 처마 밑에는 자루를 끌어안은 계집애들이 줄지어 앉아 재잘거린다. 악동들은 뻥튀기 기계를 돌리는 아저씨 주위를 삥 둘러 앉아 서로 어깨를 밀친다. 이윽고 아저씨가 돌리던 뻥튀기 기계를 멈추고 불통을 빼낸다. 아이들은 귀를 틀어막고 고개를 처박는다. 철망 자루를 둘러씌우고 걸쇠를 젖히면 '뻥'. 그래, 이게 설 소리야. 뻥~ 뻥~ 뻥~.

◆처음 해보는 뻥튀기 '뻥'

반월당 염매시장. 혼례음식, 떡을 파는 골목 곳곳 뻥튀기와 강정을 내놓고 판다. 시장을 보러 나온 아주머니들은 포장된 강정을 사고, 나이가 지긋한 분들은 아예 쌀, 콩, 좁쌀, 마른 떡가래 따위를 지고 뻥투기하러 온다. 멀리 달성 가창, 고령에서까지 이른 아침에 나선 노인네도 있다.

오늘 뻥튀기 체험하기로 한 집은 '동아이유식'. 오전 10시인데도 가게에는 손님들이 빼곡하다. 강정 만드는 아저씨 네 분은 이미 손바람이 났다. 솥에서는 물엿이 설설 끓고 가게 안쪽에서는 연방 뻥뻥 튀밥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어서 오소." 반갑게 맞아주는 남두만(69) 사장. 15년간 이 골목에서 뻥튀기를 했다는 남 사장은 '염매시장 뻥튀기'의 산 역사다. 이 뻥튀기 기계로 아들, 딸 공부시켜 의사로, 선생님으로 키웠다.

"이래봬도 염매시장이 옛날부터 뻥튀기 하나는 알아줬소. 여기 튀밥이 마산, 대전, 서울 전국 어디 안 나가는 곳이 없소. 대구 서문시장이 큰 장이지만 튀밥은 염매시장이 큰 장이오."

뻥튀기 기계 두 대를 놓고 분주히 왔다갔다 하는 남 사장은 '10분만 배우면 할 수 있다'고 대수롭잖게 말한다. 뭐든지 할 줄 알면 별것 아니지…. 길가다가 뻥튀기를 보면 나도 모르게 빠른 걸음으로 지나치는 '새가슴'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

일단 뻥튀기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조수 역할에 충실하기로 한다. 아주머니들이 비닐봉지, 가방에 담아온 알곡을 받아 한 되들이 마가린 깡통에 부은 다음 양쪽 기계 뒤로 줄로 늘어놓는 것. 그런 다음 튀겨져 김이 무럭무럭 나는 철망자루 속 튀밥을 소쿠리에 거꾸로 들이붓는다. 다 식은 소쿠리 튀밥은 커다란 다시 비닐봉지에 옮겨 담는다. 아무래도 익숙잖아 옆으로 흘러넘친다.

"어이, 그러면 다 쏟는다니깐. 이리 줘봐."

칠칠맞은 솜씨를 핀잔하며 손에 것을 뺏아 든 남 사장은 소쿠리와 비닐 한 귀퉁이를 함께 잡고 간단하게 쏟아 넣어버린다.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버벅거리는' 무안한 순간. 줄지어 앉았던 아주머니들이 보고 우습단다.

불을 조절해놓고 늘어놓은 알곡 깡통을 보던 남 사장은 양이 많은 것은 일일이 들어낸다. 기계에는 '깎은 한 되'가 들어가는데 아주머니들이 조금이라도 양을 늘려보려고 '고봉 한 되'를 퍼온 것. 들어낸 알곡을 비닐에 담아 돌려주자 아주머니들은 그만 다 넣어 튀겨달라고 조른다.

"들어가는 양이 있는데 무조건 들이붓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요. 그럼 튀밥도 덜 튀고 잘못하면 기계 안에 다 눌러 붙어요. 특히 떡가래는 그러면 못써요."

아주머니하고 남 사장이 승강이를 벌인다. 말린 떡가래는 튀밥 중에서도 가장 까다롭다. 튀기는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말린 정도에 따라 볶는 시간을 달리해야 한다. 햇빛에 말린 것과 방바닥에 말린 것도 다르게 볶아야 한다.

"자, 이젠 이리 와서 한번 튀겨보소. 걸쇠를 구멍에 끼우고 너무 세지도 약하지도 않게 젖히소. 너무 세면 자칫 주둥이가 날아가는 수가 있고, 너무 약하면 옳게 튀질 않소. 철망자루가 튕겨나가지 않도록 반대 손으로 줄을 꼭 감아쥐고…."

한데바람 맞고 콧물 쫄쫄 흘리며 두어 시간 조수질한 후에 남 사장은 걸쇠를 넘겨줬다. 옆에서는 버너불이 이글거리고 뻥튀기 기계는 후끈한데, 자칫하면 남의 집 설음식 망칠 판. 철망자루 끈을 움켜잡고 걸쇠를 걸었지만 손안의 걸쇠를 아래쪽으로 젖혀야 하는지 위쪽으로 젖혀야 하는지 순간적으로 막막하다. '에라 모르겠다'. 눈 질끈 감고 위쪽으로 확 젖히니, '뻥!'. 구수한 김이 확 솟구쳐 오르고 "잘 터졌다"고 남 사장이 말부조를 얹어준다.

◆강정만들기

농촌에서 강정 만들기는 적잖은 품이 든다. 그 중에서도 조청고는 일이 큰 일. 고두밥을 쪄서 엿기름을 넣고 단술을 만든 다음 건더기는 걸러내고 불을 지피며 계속 저어야한다. 한 가마솥, 뻑뻑한 조청이 되도록 고으려면 팔이 아프도록 저어야 한다. 과정이 복잡한 만큼 시간도 많이 걸리고 손이 많이 간다.

강정을 대규모로 만드는 데는 그런 조청을 쓸 수 없다. 조청 대신 한 말들이 깡통 물엿을 쓴다. 조청은 엿기름 때문에 고동색이 도는데 비해 깡통 물엿은 투명하다. 이 때문에 조청으로 만든 강정은 약간 누런 반면 물엿으로 만든 강정은 깨끗하고 맑다.

강정 만들기는 물엿 녹이는 데서 시작된다. 깡통의 물엿을 큰 솥에 부어 녹인다. 줄줄 흐를 정도로 묽어진 물엿은, 열기가 오른 옆의 솥에 한 족자 붓고 식용유를 조금 더한다. 부글부글 끓을 때 입맛에 따라 설탕 조금 넣기도 한다.

이때가 강정 만들기 중요 포인트. 강정 기술자들은 이 과정을 '청을 녹인다'고 하는데 청을 녹이는 기술이 시원찮으면 나중에 보관할 때 강정이 들러붙어 못쓰게 된다.

청을 적당한 온도로 조절하면 한여름까지 둬도 강정이 들러붙지 않는다.

엿이 고루 묻은 튀밥 덩어리는 네모로 짠 낮은 판 위에 부어 묵직한 롤러로 민다. 널찍하게 펴진 강정은 다시 옆의 판 위에 부어 정사각형 막대자를 굴리면서 자른다. 자른 강정은 선풍기 바람을 한번 쐬어 곧바로 봉지에 담는다.

예전 어머니들이 조청으로 강정을 만들 때는 군불을 들인 방에 얼마간 말렸다가 적당하게 바싹해졌을 때 잘랐다. 그러나 요즘은 데운 물엿으로 만들기 때문에 곧바로 자를 수 있다.

어떤 글쟁이는 그랬다. "뻥튀기는 허망한 과자다. 맛이라고 할 만한 것이 그 안에 들어있지 않다"고.

확실히 뻥튀기는 허망한 과자지만 물엿이 더해져 뭉쳐지면 더 이상 허망하지도 맛이 없지도 않다. 바삭거리며 깨지는 소리, 입안에서 살살 녹는 식감에 달콤한 맛이 더해져 주전부리로 훌륭하다.

수성구 범어동에서 강정을 만들러 온 권영선(64) 씨는 "영국에 사는 아들네에 보내려고 강정을 만들러 왔다"며 "아들도 좋아하지만 영국의 이웃들이 너무 좋아한다고 해서 넉넉히 해 보낸다"며 그 자리서 박스포장을 해 우체국으로 향했다.

오후가 늦은 시간인데도 가게 안 손님은 줄어들 줄 모른다. 아저씨들은 오늘 튀밥 200말로 강정을 만들어야 하루일을 마칠 것이라 한다. 앞치마를 벗고 가겠다고 인사하니, 남 사장은 "기술 배우려면 조용한 때 다시 오소. 내 특별히 제자로 받아줄게"라며 농을 친다. 일거리를 둔 채 빠져나오려니 뒤꼭지가 당긴다.

설 명절 '추억 튀기기' 즐거운 시간. 뻥~ 뻥~ 뻥~. 경인년 설에는 모두에게 뻥튀기 튀듯 재수 뻥, 뻥 튀시길….

♣ 강정,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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