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필름통] 팜므파탈…거부하기 힘든 치명적인 악녀들

브라이언 드 팔머 감독의
브라이언 드 팔머 감독의 '팜므 파탈'(2002년)

# 요즘은 악녀가 대세인 모양이다.

청순가련형의 여배우가 어느 날 화보를 찍고는 뇌쇄적인 몸매의 팜므 파탈(치명적인 악녀)로 변신하고, 걸 그룹도 대부분 섹시미와 야생미의 이중적인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영화에서 팜므 파탈은 '필름 누아르'란 장르에서 곧잘 써 먹었다. 욕망의 눈빛으로 이글거리는 여인, 그 여인이 유혹의 손짓을 보낸다. 옆이 터진 실크 스커트의 속이 남자의 눈앞에서 아른거리고, 붉은 립스틱 사이의 뜨거운 입김은 최면액이 되어 남자의 뇌를 마비시킨다. 그리고 곧 빠져드는 달콤함. 그것이 지나면 잠시 불길한 느낌이 스친다. 그러나 몸은 이미 거미줄에 갇혀 빠져나올 수 없다.

여인의 치명적인 유혹에 파멸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는 1950년대 할리우드 영화에서 곧잘 등장하던 공식이다. 여자의 간교한 꾐에 빠져 패가망신하는 남자의 스토리. 이를 프랑스의 영화 평론가들이 '팜므 파탈'(Femme Fatale)이라고 했다.

로만 폴란스키의 걸작 '차이나타운'. 사립탐정 기티스(잭 니콜슨)는 신비의 여인 에블린(페이 더나웨이)에게 사건을 의뢰받는다. 보통 같으면 내팽개쳤을 사건이지만, 기티스는 에블린의 신비로움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사건에 빠져든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진실에 접근한 기티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가 아버지와의 근친상간으로 낳은 딸을 구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에블린은 '보디 히트'의 매티(캐서린 터너)처럼 간교함을 감추는 팜므 파탈은 아니다. 그러나 신비함 속에 감춰진 또 하나의 어두운 이면을 목도한 기티스의 시선으로서는 팜므 파탈인 셈이다.

팜므 파탈은 최근 영화에까지 면면을 이어오고 있다.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의 사라 미셀 겔러, '레인디어 게임'의 샤를리즈 테론, 'LA 컨피덴셜'의 킴 베이싱어 등이 그 요부들이다.

최근 여배우 중에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을 지닌 이가 니콜 키드먼이다. '맬리스', '투 다이 포' 에서도 팜므 파탈로 나왔다.

또 하나의 작품이 '버스데이 걸'이다. 영국 소도시의 평범한 은행원 존 버킹검(벤 채플린). 친구도 없이 따분한 생활을 하던 그가 인터넷에서 러시아 여인 나디아(니콜 키드먼)를 신부로 '주문'한다. 그러나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해 '반품'하려 했지만, 그녀의 현란한 보디 랭귀지에 완전히 포로가 되고 만다.

팜므 파탈의 향기는 위험하지만, 그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 또한 남성들의 운명적인 약점이다. 스파르타의 유부녀 헬레네에게 사랑에 빠진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나 데릴라에게 헤어 컷 당한 삼손도 그런 케이스다. 그렇게 보면 이브에게 선악과를 얻어먹고 이 땅의 원죄를 잉태시킨 아담이 원조겠다. '여자가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남성들은 이미 모든 것을 당할 준비가 돼 있다는 또 다른 아담이고, 또 다른 삼손인 셈이다.

김중기 객원기자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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