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스윙도 어설프고 던진 공도 멀리 가진 않지만 마음만은 다들 홈런왕, 다승왕입니다."
매주 주말 눈을 뜨면 야구 글러브부터 챙기는 회사원 이진용(34)씨. 친구들과 사회인 야구팀을 만들기로 뜻을 모은 뒤 주말에 학교 운동장 등을 찾아 캐치볼을 하는 등 조금씩 야구의 기본을 익히는 재미에 푹 빠졌다. "매주 야구를 하러 나가려니 아내의 눈치가 약간 보이긴 하지만 이게 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큰소리를 치곤 하죠. 다들 초보자이니 만큼 올 한 해는 부지런히 훈련을 한 뒤 내년부터 사회인야구 리그에 뛰어들 생각입니다."
1970년대 고교 야구에 열광했고 80년대 이후에는 프로야구로 옮겨 간 한국인들의 야구 열정이 이제 사회인 야구로 옮겨 붙고 있다. 10여년 전부터 대구를 비롯, 전국 각지에서 사회인 야구가 자연스럽게 활성화되다가 최근 1, 2년 사이 그 열기가 더욱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대구는 그 중 사회인 야구 열기가 특히 높은 곳으로 최근에는 신생 팀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리그 가입을 위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을 정도이다.
대구에는 비교적 큰 규모의 사회인야구 리그만 9개 정도. 이곳에서 550여개 팀이 활동 중이다. 그보다 작은 규모의 리그에도 100개 팀 정도가 뛰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어림잡아도 650여개의 팀, 1만3천여명이 그라운드에서 치고, 던지고, 달리는 재미에 맛을 들인 셈. 리그에 소속되지 않은 팀도 200여개나 되고 새로운 팀이 계속 생겨나는 추세다.
국민생활체육 전국야구연합회의 정확한 통계는 나오지 않았으나 현재 전국에서 사회인야구 리그에서 뛰는 야구팀은 어림잡아 4천개를 훌쩍 넘길 것으로 보고 있다. 야구 용품 생산 공장의 재고가 이미 바닥났고 새 물량을 대기도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렇다면 이처럼 사회인야구 열풍이 불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시작하면서 입소문을 통해 알려지던 사회인야구 리그가 점차 활성화됐다. 여기에 주5일 근무제가 확산되고 한국 야구대표팀이 두 차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3위와 2위에 오르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프로야구뿐 아니라 사회인야구에도 훈풍이 불어왔다. 여기에 한번 더 사회인야구 열기를 부채질한 것은 TV 프로그램. '천하무적 야구단'이라는 이름으로 연예인들이 사회인 야구팀을 꾸려 분투하는 과정이 인기를 끌면서 사회인 야구 성장세의 기폭제가 된 것.
'천하무적 야구단'에 나오는 연예인 중 일부는 자세도 좋고 제법 능숙하게 플레이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평범한 뜬공을 어김없이(?) 빠트리고 의욕만 앞서 경기를 그르치기 일쑤다. 일반인들이 사회인야구에 뛰어들 때 모습도 다르지 않다. 모두들 '스포츠 하이라이트'에 나올 플레이를 꿈꾸지만 몸이 어디 처음부터 따라주는가. 하지만 천하무적 야구단이 점차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듯 하나하나 배워가다 모두의 박수를 받을 만한 플레이가 나온다. 그것이 사회인 야구의 묘미다.
지난달 18일 경북고 출신으로 삼성 라이온즈에서 뛰기도 했던 하춘동(33)씨는 사회인 야구를 하는 이들을 위해 야구 클리닉 '대구 볼파크'를 열었다. 하씨뿐만 아니라 역시 경북고-삼성 출신의 투수 최재호씨가 운영 중인 야구 클리닉 등이 인기를 얻고 있다. 하씨가 운영하는 야구 클리닉은 500㎡(150평) 규모의 실내연습장과 내·외야 플레이 연습이 가능한 외야 구장, 야간 훈련을 위한 조명 시설까지 갖추고 타격과 수비, 주루 등 야구 전반에 대한 기본기를 가르쳐 준다. 좀 더 좋은 장비를 갖추고픈 욕심뿐 아니라 멋진 플레이를 선보이고 싶은 사회인 야구 참가자들의 욕구를 하나씩 채워주고 있다.
하씨는 "보름여 만에 50여명의 야구 동호인들이 모여들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이 같은 야구 클리닉이 몇곳 있기는 하지만 야구를 배우고자 하는 열의에 비해 야구 강습을 위한 공간, 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에 더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에 오는 동호인들은 대부분 야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다는 점을 아쉬워한다. 야구를 손쉽게 즐길 곳만 있으면 동호인들은 더욱 늘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회인 야구에 첫 발을 디디기 위해 드는 비용은 50여만원 정도. 리그 가입비 200만~250만원을 팀원들과 나눠 내고 유니폼과 글러브 등 개인 장비를 갖추는 데 드는 돈이다. 일단 리그에 발을 담그고 나면 개인이 부담할 비용은 월 3만원 내외가 대부분이다. 야구를 할 시간만 낼 수 있다면(사실 시간이 더 문제일 수도 있지만) 직장인으로선 큰 부담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개인 부담 비용보다는 야구장 확보가 사회인야구 활성화에 더 큰 걸림돌이다. 대구에서 사회인야구 리그들이 쓰는 운동장은 14개 남짓. 학교 야구팀이 있는 영남대, 대구상원고, 대구고, 경상중, 대구중, 경운중과 강변구장(2면), 방천구장(3면), 경산시민구장(2면) 정도가 전부다. 그나마 학교 구장의 경우 연간 최소 1천만원에서 2천만원 정도의 비용을 내야 한다. 그 외에는 다른 스포츠 동호인들이 많이 쓰는 두류운동장과 공터나 마찬가지인 화원의 하빈구장, 새천구장 등에서 야구를 해야 하는 형편이다.
지역에서 사회인야구 리그를 운영 중이기도 한 최종문 대구방송 해설위원은 "학교 야구팀의 일정과 날씨 등을 고려하면 야구장은 태부족이다. 각 리그마다 구장 확보를 위해 신경전을 벌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소 야구장이 25면은 있어야 동호인들이 제대로 야구를 즐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표준규칙을 만든 뒤 지역과 전국 규모의 대회를 열어주다 보면 전국의 사회인야구도 이에 맞춰 자연스럽게 체계화되고 프로야구 열기에도 직접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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