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생화 한 컷] (12)노루귀

양지쪽엔 아지랑이가 아롱거리지만 아직 칼바람이 귓전을 스치는 이른 봄, 낙엽 사이로 살포시 얼굴을 내미는 꽃이 있다. 하얀 솜털이 달린 여러 개의 긴 꽃자루에 각선미를 뽐내며 흰색에서 보라색까지 다양한 색의 꽃을 달고 나오는 야생화, 노루귀다.

눈과 얼음을 뚫고 나오는 풀이라 하여 '파설초'(破雪草)로도 불리는 노루귀는 미나리아제비과의 여러해살이풀. 우리나라 전역의 산지 그늘에서 10㎝ 내외로 자란다. 이름부터 예쁘지만 꽃 역시 앙증스럽다. 꽃이 한창 필 때쯤 세 갈래로 갈라진 잎이 돋아나는데 뒷면에 보송보송한 털이 많고 안쪽으로 말려 있어 정말 노루귀를 닮았다. 만져보면 개나 고양이의 귀를 만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꽃 이름이 노루귀.

이렇게 예쁜 '꽃잎'은 정작 꽃잎이 아니고 꽃받침조각(화피)이다. 노루귀뿐만 아니고 미나리아제비과에 속하는 꽃잎은 모두 꽃받침조각이다. 꽃이 지고 이내 달리는 열매에도 털이 많다.

우리나라에는 노루귀가 3종이 있는데, 중북부지방서 만나는 노루귀와 제주도와 남부지방 일대에서 자라는 새끼노루귀, 울릉도서 자생하는 섬노루귀가 그것. 새끼노루귀는 잎과 꽃이 동시에 피며 잎에는 무늬가 선명하다. 울릉도의 성인봉 산기슭 그늘에서 볼 수 있는 잎과 꽃이 매우 큰 섬노루귀는 일명 '큰 노루귀'로도 불린다.

노루귀 잎은 나물로도 무쳐먹는데, 쓴맛에 독성이 있으므로 뿌리를 제거하고 살짝 데친 다음 물에 담가 우려내야 한다. 또 예로부터 한방에서는 장이세신(獐耳細辛)이라 부르며 약용으로도 썼다. 사포닌이 함유되어 있는 뿌리는 창종, 장치료, 폐결핵, 폐출혈, 열성질병, 간질병, 기침, 류마티스, 피부병 등에 약재 및 세척재로 이용된다.

노루귀는 이른 봄에 꽃이 피는데다 꽃 색깔도 흰색·분홍색·보라색 말고도 자연 상태에서 연분홍·진분홍·청보라·남색 등으로 피는가하면, 털이 난 노루의 귀를 닮은 잎 때문에 관상용 야생초로 사랑받고 있다.

김영곤 야생화연구가

감수 김태정 한국야생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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