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졸업, 그리고 다시

입춘 한파가 김장독 깬다더니 요 며칠 추웠습니다. 봄 시샘하는 추위가 유난해도 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겠지요. 동지 지나면서 서서히 부푸는 땅속은 지금쯤 봄 마중하느라 들썩이겠습니다.

봄 시샘하는 바람 속에서도 양지바른 화단을 들여다보면 거기 봄까치꽃 다문다문 피어 있을 것입니다. 풀 먹인 옥양목 이불 호청 위에 소복하게 수 놓였던 연보랏빛 봄까치꽃은 볕 좋은 양지쪽에서는 겨울에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꽃은 늘 그 자리에서 피고 져도 보지 못하는 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몸 낮추고 눈 낮추어 가만 들여다보는 이에게는 잘디잘게 연 보랏빛 안개 피워 올려주는 눈부신 꽃입니다.

이른 봄소식 전해주는 까치같이 반갑다고 봄까치꽃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세 개의 꽃잎 중 한 꽃잎만 길쭉한 모양으로 밑으로 처져있어 개불알풀이라고 합니다. 또 땅을 기며 자라서 꽃피우는 모습이 땅에 비단을 깐 듯이 아름답게 보여서 땅 비단이라고 하고 한자말로는 지금(地錦)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불리든 이 꽃은 '기쁜 소식'이라는 고운 꽃말도 가지고 있습니다.

졸업과 입학의 계절입니다. 그들이 다시 가는 이 새 봄길 위에 어쩌면 입춘 한파 같은 꽃샘 추위가 불어 닥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찬바람 속에서도 그 길을 가겠지요. 호된 칼바람 속에서 피는 꽃이 더 맑고 향기가 진하다는 것을 알기에 추운 길 칼바람을 맞으면서도 묵묵히 갈 것입니다. 몸 낮추고 눈 낮추어야 겨우 볼 수 있는 이 작은 봄까치꽃도 이 추위 속에서 견디며 피었기에 자기만의 세계를 다 가지고 환하게 한 우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작은 봄까치꽃처럼 세상을 나아가는 졸업생들에게는 이미 견딜 수 있는 힘, 그리고 환하게 꽃 피울 수 있는 힘이 분명 있습니다. 포기하고 절망하지 않는다면 그들 속에 깊이 있는 어린 꽃눈들은 분명 그들의 길 위에서 당당한 이름으로 꽃 피어 날 것입니다.

원한다고 다 이룰 수 있는 세상은 아니지만 어떤 눈으로 보는가에 따라 세상은 달라집니다. 눈부신 매화나 산수유를 올려다보는 행복도 있겠지만 몸 낮추고 눈 맞추어보는 행복도 분명 있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이들이 몸 낮춰 느끼는 행복을 먼저 알아간다면 키 큰 나무에서 환하고 눈부시게 피는 행복도 '기쁜 소식'처럼 뒤따라 올 것입니다. 그 때 세상은 그들의 것이 아닐까요?

다시 시작하는 졸업생들은 기쁜 소식 안고 온 봄까치꽃들입니다. 그들이 가는 길이 그들만이 지닌 향기와 색깔로 찬란하게 빛나기를 봄까치꽃 당당한 이름으로 빌어 봅니다.

김승해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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