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7월 25일,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 미국 포크 계의 전설인 우디 거스리를 이었다고 해서 네오 거스리라고 칭송받던 밥 딜런이 난데없이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무대에 나타났다. 블루스 록 밴드와 함께였다. 그가 연주를 시작하자 청중은 '여긴 포크 축제장이다. 포크를 불러라'며 야유했다. 평론가와 언론은 딜런의 변절을 야유했고, 심지어 '포크가 죽었다'는 말까지 나왔다.
1969년 재즈 트럼펫 주자 마일즈 데이비스의 음반 '인 어 사일런트 웨이'(In A Silent Way)와 '비치즈 브류'(Bitches Brew)를 들은 재즈 팬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어쿠스틱 악기 위주라는 재즈의 기존 관념을 깨고 트럼펫에 마이크를 달았기 때문이다. 밴드도 모두 일렉트릭 악기였다. 딜런 때와 마찬가지로 '재즈가 죽었다'는 독설이 나왔고, 데이비스는 변절자라고 불렸다. 하지만 데이비스의 두 음반은 70년대 이후 재즈계를 휩쓴 재즈록, 혹은 퓨전 재즈의 효시가 됐다. 딜런이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나선 뉴포트에서의 이 무대는 포크와 록을 섞은 포크록의 시대가 시작됨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상징이 됐다.
1962년 딜런이 데뷔 음반인 '밥 딜런'을 발매했을 때 전 세계의 포크, 블루스 팬들은 열광했다. 하모니카와 통기타를 연주하면서 빠른 속도로 전통 포크 블루스 곡을 불러나가는 그의 모습에서 20, 30년대의 향수를 느꼈기 때문이다. 초창기 포크 블루스를 완벽하게 부활시켰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는 사회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가사로 좌파의 영웅이 됐다. 60년대 말 사회주의 분위기가 전 세계를 휩쓸 때 체 게바라, 마오 쩌둥과 함께 대학생의 3대 우상으로 손꼽혔다는 데서도 그에 대한 광풍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바람만이 아는 대답' '소낙비' 등 많은 딜런의 곡은 학생 운동권 노래로 번역돼 불리기도 했다.
밥 딜런이 3월 우리나라에 온다. 1941년 생이니까 우리 나이로 70세이다. 일본 방문은 여러 차례지만 한국 방문은 처음이다. 65세 때인 2006년에 발표한 41번째 공식음반 '모던 타임스'는 미국의 빌보드 차트와 캐나다, 인터넷 차트에서 1위에 올라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딜런이 첫 내한 공연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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