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700자 읽기] 종이날개/피귀자 지음/북랜드 펴냄

'딸 아이를 시집보내던 날 남편은 울었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그 옛날 나를 시집보내던 날 눈이 붓도록 우시던 어머니의 얼굴이 내내 걸려 울지 않겠노라고 다짐에 또 다짐을 했던 때문이다. 며칠 뒤 딸 아이 방을 청소했다. (성장한 뒤 외지에서 생활한 딸은 가끔 집에 들리곤 했다.) 딸의 방에서 만난 긴 머리카락 한 올, 그동안 참았던 울음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집을 떠나기 전이나 가끔씩 들를 때마다 떨어뜨리는 긴 머리카락을 치우며 얼마나 구박을 하였던가. 몇 개만 떨어져 있어도 집 안이 머리카락으로 덮인 듯하여 잔소리깨나 퍼부었던 그것이 그토록 정겨울 줄이야. 이제는 더 이상 집을 어지럽힐 일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슬픔이 한꺼번에 몰려와 눈물지으며 하루 종일 딸의 흔적을 찾아 헤맸다.' -수필 '흔적'의 줄거리-

가족이란 그런 것이다. 종일 어지럽히고 쿵쾅거리는 아이, 잔소리를 달고 사는 아내, 걸핏하면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남편….

가족이 성가시다고 여겨지는 것은 언제까지라도 곁에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누가 영원히 내 곁에 머물 것인가. 모든 인연은 '내일'이면 헤어질 시한부 인연이다. 수필집 '종이날개'는 살면서 마주친 사람과 사건, 슬픔과 기쁨, 흔적과 후회에 대해 이야기한다. 221쪽, 9천원.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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