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자(51·동구 신암동)씨는 쌓인 한에 북받치는 듯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장애인으로 살아온 50년 인생도 서러운데 84세 된 친정어머니를 10년 동안 수발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 26세 아들마저 척추추간판탈출증 수술을 받고 꼼짝 못해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장애인의 멍에=강원도 묵호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서씨는 세살 무렵 심한 고열을 앓고난 뒤 걷지 못하게 됐다. 지금은 절뚝대며 혼자 걸어다닐 수 있지만 어릴 때는 아예 몸을 가누지 못해 업혀 다녀야 했다. 소아마비였다. 서씨는 2년 늦게 초등학교에 들어가 3년 남짓 다녔다. 어머니가 장애를 가진 딸이지만 글은 읽고 쓸 줄 알아야 한다며 서씨를 업고 등하교시켰다.
25세 무렵 시집을 가 아들을 낳았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남편은 술만 마시면 '병신'이라고 욕을 퍼붓고 매질을 해댔다. 아들이 다섯살 무렵, '이렇게 맞고 살다간 정말 죽겠구나' 싶어 아들을 데리고 도망쳐 대구로 왔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대구라면 남편에게 잡히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당시 집을 나올때 그녀의 수중에는 단돈 6만원과 옷가지 두벌이 전부였다.
먹고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다 했다. 식당일이라도 구할 수 있었으면 그나마 살기가 수월했겠지만 걸음 불편한 장애인이라 아무도 써주지를 않았다. 고작 구할 수 있는 일은 밤까기와 마늘까기였고 하루 하루 입에 풀칠하는 것으로 만족하며 아들을 키웠다.
▷모른 척할 수 없는 내 어머니=친정어머니는 10년 전부터 대구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 위로 언니 둘과 오빠가 있지만 배를 타다 갑상선 질환을 얻어 누워 있는 큰오빠와, 역시 갑상선 질환으로 자리보전하고 있는 큰언니, 뇌출혈 수술을 한 작은언니는 모두 어머니를 돌볼 사정이 되지 않는다.
서씨는 "나도 먹고살기 어려운 처지지만 그래도 산 입에 거미줄 치겠나 싶어 어머니를 대구로 모셔왔다"며 "장애인인 딸이 가엾어 늘 눈물로 키웠던 어머니인데 어찌 자식이 늙은 어머니를 모른 척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친정어머니는 대구로 오고 나서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됐다. 당뇨와 치매, 천식, 폐질환이 겹치면서 수시로 기저귀를 갈아야 하고 음식을 떠먹여 주어야 하는 중환자가 된 것이다.
서씨는 "어머니가 가끔 정신이 돌아오면 '내가 너한테 이렇게 짐이 될 줄 몰랐다'며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곤 하신다"며 "최근에는 폐질환이 더 악화돼 밤새 잠도 못 자고 간호를 해야 한다"고 했다.
▷삶의 마지막 희망인 아들=힘겨운 삶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아들 성훈(가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착한 아들은 "다른 어머니들은 자식 버리고 이혼한다지만 어머니는 장애인의 몸으로 다섯살 아들을 데리고 나와 평생 키워주셨다"며 "그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어머니를 편히 모셔야 한다"고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기업 제조공장에 입사해 꼬박꼬박 어머니에게 월급을 가져다줬고, 공익근무요원으로 2년을 복무하면서도 밤에는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해 생활비와 할머니의 치료비를 보탰다.
하지만 1개월 전 아들은 추간판탈출증 진단을 받아 허리 수술을 받았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당장 벌이가 사라져 세 식구 먹고사는 일이 다급하게 됐다. 서씨는 밤낮으로 어머니 간호에만 매달려 있고 아들은 푼돈이라도 벌어보겠다며 아르바이트를 나갔다 이틀도 못 가 자리에 눕는 날이 계속되고 있다.
서씨는 "지금껏 어머니와 아들 병원비, 생활비를 해결하느라 진 빚도 수천만원에 이르고 방세를 10개월 이상 못 내 300만원 넘게 밀려 있다"며 "앞으로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할지 암담하다"고 눈물을 훔쳤다.
한윤조기자 cgdream@msen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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